영조의 청계천 준설
1406년 태종이 처음으로 청계천의 골격을 만든 후 1760년 영조가 본격적으로 청계천 준천 사업을 했고, 이 사업은 영조 스스로 본인의 육대 사업이라 할 만큼 그 의의가 크다. 영조 대의 청계천 준설은 지도자의 의지와 백성의 노력이 어우러지며 성공적으로 마친 국가적 사업이었다. 청계천은 조선이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도시 정비 과정에서 새롭게 준설한 인공 하천이었다.
서울은 전통 시대부터 홍수에 취약한 구조였기 때문에 1406년 1월 처음 청계천 공사를 실시한 후 세종 대에도 태종 대의 성과를 이어 청계천의 준천 사업을 실시하였다. 사실 청계천이라는 용어는 영조 때 본격적인 준천 사업이 이루어져 ‘개천을 깨끗이 치웠다.’는 뜻의 청계천淸溪川으로 바뀐 것이다. 비록 태종과 세종 때 부분적으로 준천 사업이 이루어졌지만, 청계천 준천 사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추진한 왕은 영조였다. 당시 상업의 발달로 도시 인구가 늘면서 청계천 오염이 심각해졌고, 벌채로 토사가 청계천을 메워 홍수 우려가 심각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간파한 영조는 준천 사업을 통하여 서울의 홍수를 방지하는 한편 도시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실록을 비롯한 『준천사실』 등에 자세히 남겨 후세에 남기고자 하였다. 청계천 준설은 단순히 하천 정비 사업의 성과로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와 의견 수렴을 통해 온 백성의 힘을 이끌어 낸 영조의 지도력이 빛을 발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