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家 이야기 - 천년 공부의 마지막 일대 연성공 공덕성 공덕제 공덕무의
모르는 것은 책에서 구하고, 지난 일은 기록으로 남긴다.
讀末明書, 記做過事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힘이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한 有限 하다.
사상과 관념, 그리고 학문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학문의 도도함과 실천적 사상,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이념이 한 인간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그를 성자의 반열에 올려놓고도 남음에 이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공자도 일반적이고 사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학문으로 다시 태어났다. 대륙의 정신을 관통하여 동양을 지배했다.
공자 孔子 는 무려 2,000년 넘는 시간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동양의 정신적 지주이다. 중국을 관통하는 사상과 더불어 그 주변과 변방의 나라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혼돈의 시대에서 정신적인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에 있어 그만한 인간이 없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았다면 가히 불후 不朽 이다. 결코 죽지 않고 오직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만세사표 萬歲師表 라는 말로 그를 형용하기에 아깝다. 그러나 그 말밖에 없다.
이 책을 쓴 가란 柯蘭 은 1936년 북경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이 책은 공부의 ‘마지막 세대’로 대륙에 남아있는 그의 어머니 공덕무의 이야기이다. 가란은 이미 수년 전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공부내택일사〉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그 책은 지금까지도 해적판이 출판되고 있을 정도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문화대혁명 시절의 혹독했던 공자비판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대의 질곡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아픈 기억이다.
이에 반하여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외부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공부 孔俯 내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부의 진정한 역사책으로도 손색이 없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가란이 아니었다면 결코 불가능하다. 그녀는 공자가의 마지막 세대가 일찍이 향유하였던 부귀영화의 끝자락을 먼발치서 바라본 대신 마지막 세대로서의 모든 고난을 다 겪을 수밖에 없었다.
가란의 친가 역시 명문가이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공자의 76대손인 연성공 衍聖公 공령이 孔令貽 이고, 그의 어머니는 공덕무 孔德懋 로서 중국에 살고 있는 공자의 유일한 적손이다. 중국의 정치적 변혁기를 거치면서 공자의 77대손인 마지막 연성공 공덕성孔德成은 곡부에서 중경, 남경을 거쳐 대만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대륙에는 그의 친누이인 공덕무孔德懋만이 유일한 직계후손으로 남았다. 그 시대에 공부와 인척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문은 결코 평범한 집안이 아니다.
그녀의 할아버지인 가소민은 젊은 시절 진사에 급제하였고, 한림원에 들어가 광서제, 선통제 부의 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후 전례원 학사, 북경대학 총장 등 요직을 역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역저를 남겼다. 중국정사 25사 史 의 하나인 〈신원사〉, 〈춘추곡량전〉 등은 그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그의 셋째 아들인 가란의 아버지 가창분 柯昌汾 은 글 읽기보다는 무예를 좋아하여, 고등경찰관 학교에 진학하였고, 외향적인 성격 탓에 가정에 충실하지는 못하였다. 그녀는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하였고, 14살의 어린 나이로 한국전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으나 문화대혁명을 맞아 농촌으로 하방 下放 당하여 갖은 고생을 하였다. 그와 같은 고초를 당한 주요한 이유는 공자라는 성인의 후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그 후 항상 세상일에 초연한 듯 보였으나 마음 깊은 곳에는 성인의 후손이라는 긍지와 삶에 대한 열망들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문학으로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녀는 〈천진문학〉 잡지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평소 외가인 공부의 일상사를 소재로 한 TV 드라마 〈공부비사 孔府秘史 〉의 대본을 썼고, 그 외 다수의 시, 산문, 소설을 남겼다. 저자의 어머니는 공자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많은 고통을 당하였고, 저자 또한 이를 피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그녀가 마땅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곡부로 돌아가 공부와 문학을 위하여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그녀는 천진시 하서구 河西區 부구청장으로 발령받아 전근을 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축하하기도 하였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녀의 재능이 사라질까 걱정하며 애석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서도 능력을 발휘하여 훌륭하게 공직생활을 마무리 하였다.
다시 중국은 공자 열풍이다.
대국굴기의 이념을 우리가 마음으로 되살리기엔 이해가 무릇 불가항력이다. 조화사회를 추구하는 그들의 이념을 모를 바도 아니다. 그러나 문화적 우수성을 확보하지 못한 나라로서는 눈부신 경제적 발전도 사상누각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공자의 학문적 경지와 인문적 성취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천년의 사상을 지배하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품격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또한 정치적인 선동요건이 아니길 바랄 뿐이고, 다시는 본질에 대한 시대적인 왜곡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인 곡학아세 曲學阿世 는 당장의 명분은 확보할 수는 있어도 만고의 진리의 싹을 자를 수는 없다. 그것은 대륙의 핏줄인 황하가 유유히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요체는 이렇다.
“해와 달은 사심 없이 비추고, 하늘의 행운은 변함이 없다.”
日月無私照, 天行有常存
이 책의 내용은 공자 집안의 자손으로서 그의 세대가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살아온 역정에 대한 기록이다.
인간 공자의 기록이다. 시대의 왜곡에도 불구하고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공자는 말했다. 시대를 뛰어넘어 그 가치의 재생산과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책의 말미에 이런 글이 있다.
“공부 公俯 의 1천년 역사는 이미 끝났다. 그러나 공부의 최후의 자녀는 아직도 가야할 역사의 길을 가고 있다.”
우리라고 예외이겠는가!
돌아보지 않으면 앞으로의 갈 길의 방향을 알 수가 없다.
위대한 인간의 그 뒷모습을 보는 것은 정신적인 관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오늘을 반추하는 옛 거울[古鏡]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