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론
나는 충청도에서 태어났지만, 교편 생활을 하는 숙부를 따라다니느라고 어렸을 때 낙동강이 흐르는 경상도 어느 소읍에서 자랐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여름의 어느 날, 낙동강변 둑에 앉아서 물가에 있는 네 명의 소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 해가 막 지고 있어 강물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소녀들은 치마를 한 손으로 틀어쥐고 하얀 종아리를 내놓은 채 물가에서 조개를 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한 마리의 물뱀이 그 소녀들 사이로 지나갔다.
그러자 소녀들이 저마다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그 소녀들 가운데 한 소녀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소녀들은 저마다 아이구 어무야 한다든지, 으악 한다든지, 아이쿠 한다든지 했는데, 그녀들 중에 한 명이 아이쿠 아부야 아부야 하고 소리쳤던 것이다.
그 소녀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아주 미묘한 감동을 받아서 가슴이 뛰었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강둑의 잔디를 손으로 쥐어뜯으면서 한동안 그곳에 앉아 있었다. 나는 문학을 생각할 때마다 그때의 일을 회상한다.
그 소녀의 비명이 나를 감동시킨 것이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바로 그것이 문학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6.25 전쟁 무렵에 태어난 나는 그 무렵에 부모를 잃었다. 아버지는 학살되었고, 어머니를 가출을 했던 것이다. 당시 할머니는 어린 나를 무릎에 앉히고 '얘야, 너의 엄마는 너를 버리고 도망을 갔단다'라고 고자질을 했다.
할머니의 심경으로서는 손자가 불쌍할 때면 집을 떠난 며느리가 증오스러웠는지 모른다. 할머니의 그 증오는 곧 나에게 이어졌고, 나는 어머니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찬 유년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 속 다른 곳에서는 어머니의 존재를 그리워하는 <마음 속의 어머니상>을 키우고 있었다. 그것이 결국 나의 소설 바탕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전쟁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졌다. 어머니의 상실은 나에게 문학이라는 것을 남겨준 것이다.
내가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지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그러나 실제 얼마나 좋은 작품을 남겼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화두에 대한 답을 앞으로 풀어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