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해후
불타는 작가정신을 소유한 완벽주의자 작가 김영현
''나는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듯이 초조하고 불안하다. 조울증 때문에 괴롭다. 나는 분노에 기대기보다는 주로 슬픔에 기대어 소설을 쓴다. 나는 절대로 밤 12시가 넘어서는 글을 쓰지 않는다(가능한 한 그러려고 노력한다). 나는 많이 싸돌아다니는 편이지만 취재를 위해서 한 적은 거의 없다. 집필 속도는 아주 빠른 편이고, 다 쓰고 나서 많이 주물럭거린다. 표현법에 세밀한 주의를 기울인다.
지금까지는 싸구려 변두리 여관을 많이 이용해서 글을 썼다. 내 성격의 결함은 흥분을 잘하고 흐리멍텅하다는 것이다. 나의 절대적 관심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동체'의 건설이다. 그리고 이 불쌍한 '나'라는 인간을 해방시켜 주는 일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쉽게 열광하지만 상처도 많이 준다. 근본적인 질문에 익숙해 있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한 사람의 철학도라고 자임한다. 두드러진 취미는 없다. 무슨 내기에서 지면 금세 얼굴에 감정이 나타난다.''
위의 글은 김영현이 자신의 소설집에 스스로 쓴 연보에서 발췌, 인용한 글이다. 작가 김영현이 풀빛출판사에서 간행한 첫시집『겨울바다』의 표지 사진엔 확실히 위의 진술이 맞아떨어질 만한 표정으로 어둡고 춥고 쓸쓸하게,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정면을 응시하는 고독한 지식인의 모습이 포착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 김영현은 위의 진술처럼 초조하거나 불안해하는 모습을 후배들 앞에서 거의 보인 적이 없다. 그는 늘 낙천적이고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활짝 웃으면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밝은 성품의 소유자이다. 그의 지인들은, 그가 늘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준다는 것을 잘 안다. 그는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불타는 작가정신을 소유하고 있는 완벽주의자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이 세상에 존재해야 마땅할 인간다운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불의한 시대의 사악함에 대하여 분노하고, 황량한 세태로 인해 절망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늘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미덕이며, 그의 소설을 밝은 희망으로 인도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창작과비평사 14인신작소설집에 단편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1989), 『해남 가는 길』(1992), 장편 『풋사랑』(1993),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1995), 『내 마음의 망명정부』(1998) 그리고 시집『겨울 바다』(1988), 『남해 엽서』(1994), 장편동화 『똘개의 모험』(1992) 등을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