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창조적 진실 -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완성한 생각들
“모든 그림에서 자신만의 리얼리티,
진실을 구하기 위해 애쓰던 예술가가 여기 있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가 마크 로스코
섬세하고 특별한 창의력의 근원
거대한 캔버스, 강렬한 컬러, 단순한 표현. 현대 미술의 거장 마크 로스코를 말하면 사람들은 그만의 고유한 화풍을 떠올리곤 한다. 개성과 천재성을 모두 갖춘 독보적인 화가가 되기 전 마크 로스코는 예술과 예술가로서의 자신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탐색하던 사람이었다.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은 위대한 화가로 발돋움하기 직전에 로스코가 쓴 글로, 그가 죽은 후 창고에 박혀 있던 원고를 발견한 아들이 정리해 출간한 것이다.
각 장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로스코가 생전에 관심을 가졌던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생각들을 보여준다. 로스코는 예술가가 가진 고민을 비롯해, 주제, 조형성, 아름다움, 공간, 신화, 자연주의, 토착 미술 등 예술 작품의 외면과 내면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여러 요소들에 대해 솔직하게 쓰고 있다. 스티브 잡스, RM 등 많은 크리에이터가 영감을 받은 예술가로 꼽고 있는 마크 로스코. 그가 가진 창작자로서 철학과 치열한 사색은 긴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왔다.
“부서질 듯한 원고를 한 장 한 장 사진으로 찍었다”
소문만 무성하던 원고, 드디어 세상과 만나다
마크 로스코는 1970년 2월 25일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추악한 재산 분쟁이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로스코가 쓴 원고가 있다’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소문은 있었으나 실제로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던 원고는 갑자기 분쟁의 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분쟁이 지난하게 이어지면서 소문의 원고는 잊혔고, 아무도 찾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원고가 모습을 드러낸 건 1988년. 우연히 창고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도 오랫동안 원고는 그대로 방치됐다.
마크 로스코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로스코는 이 책의 원고를 발견하게 된 과정과 책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던 이유, 책의 출간에 대한 고민, 출간을 결심한 후 스스로 원고를 읽고 글의 순서를 정하면서 예술가인 아버지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을 밝힌다. 또 그는 마크 로스코가 생전에 지인과 나눈 편지, 그의 그림에서 다룬 주제 등을 살펴본 바에 따라 본문의 작성 시기를 추측한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의 상황과 연결 지어 본문의 분위기와 맥락을 설명한다. 죽은 후로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거장이 될지 몰랐던 뉴욕의 위대한 예술가가 집필한 80여 년 전 글은 그렇게 우리에게 한 걸음 다가선다.
“이것은 예술가이자 사상가로서의 로스코가 발전해가는 과정이다”
변화의 시기에 그는 붓 대신 펜을 잡았다
마크 로스코는 생전에도 크게 명성을 떨쳤다. 그는 ‘시그램 프로젝트’에 3만 5000달러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금액의 의뢰를 받을 정도로 세상으로부터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은 화가였다. 그러나 이 책의 원고를 쓸 때의 로스코는 달랐다. 슬럼프에 빠져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작품도 팔지 않고, 전시회도 열지 않았다. 결혼 생활을 온전히 유지할 수 없어 별거 중이었다. 로스코는 이런 상황에서 글을 썼다. 그래서 글에서 가끔 불평과 신경질이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움이, 간혹은 후회가 보이기도 한다. 로스코는 당시 인기 있던 특정 미술가를 혹평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로스코가 당시 처했던 상황과 심리적 근거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큰 캔버스를 가득 채운 레드, 오렌지, 바이올렛 등 우리가 마크 로스코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작품들이 있다.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은 로스코를 위대한 화가로 만들어준 그 명작들을 창작하기 이전에 그가 예술, 창조 등에 대해 생각한 것을 적은 것이다. 책의 본문에 수록된, 이 책을 집필하던 즈음에 그렸던 로스코의 작품들만 봐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대표작들과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예술가로서 새로운 움직임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생각을 쓰고 있었다. 아마 이 책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로스코만의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우여곡절 끝에 책이 되었고, 비로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미래의 우리와 공유한다.
“그는 그림으로 만족스럽게 표현할 수가 없어 책을 썼다”
‘마크 로스코’라는 신비한 도시로 가는 열쇠
마크 로스코의 이 원고들은 2006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책으로 출간되었고, 17년이 지나 개정판으로 재정비되었다. 아들 크리스토퍼 로스코는 개정판을 준비하며 마크 로스코에게 헌정하는 예술가 마코토 후지무라의 글을 추가한 것에 더해, 이 책의 원고가 쓰인 시기를 조금 앞당겨 추측한 근거 자료를 추가했다. 초판을 출간했을 당시에는 원고는 1940년에서 1941년 사이에 쓰였을 것이라고 했으나, 출간 이후 1930년대일 것이라는 증거 자료를 추가로 확인한 것이다. 그는 ‘메모 노트’라는 아버지 마크 로스코의 다른 글 내용과 이 책의 본문 내용을 꼼꼼히 비교하며 확신한다. 이 사실은 로스코의 팬들에게 그의 1930년대 작품과 글을 연결해 새로운 지적 흥미를 선사할 것이다.
로스코는 원고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았다. 알아보기 힘든 부분도 많고, 굉장히 늘어져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도 있으며, 마침표가 제대로 없는 문장도 더러 있다. 아들 크리스토퍼가 ‘시작하는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글에는 “지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방도로” 보이는 은유가 넘쳐나고 애매모호하고 혼란스러운 단어들이 방대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예술가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도 로스코가 방관자가 아니라 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창작에 끊임없이 몰두하는 참여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글을 읽어야 한다. 훗날 그는 위대한 침묵의 화가로 불리게 된다. 그의 시작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