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순간 2
깨달음!
신비하게만 느껴지는 특별한 정신 영역.
그렇다. 깨달음은 매우 특별한 정신 영역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으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그리고 <깨달음>을 얻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가르치고자 하는 세계는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며 누구나 한번쯤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절대 깨달을 수가 없다. 아니 깨달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의 해피존(Happy Zone)은 너무나 넓고 광대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아니, 부처님이나 깨닫는 깨달음을 감히 내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한테 이 세상은 너무나 넓고 누릴 것도 많아 여기저기에 행복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바로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그 마음을 채울 수 없는 사람이다.
석가도 그랬고 달마도 그랬고 비록 하찮은 나무꾼이었던 혜능도 그랬다.
그래서 이들이 얻은 깨달음은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세계라 하여 그 세계를 <극락>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세상에 <극락>이나 <천당> 따위는 없다.
그러나 깨달음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와 같은 세계를 마음껏 상상하며 추구하는 것이다. 지금은 21c다.
이제 극락도 21c에 맞게 새롭게 설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깨달을 수가 있다.
단, 진정으로 깨달음을 알길 원한다면.
깨달으면 무엇이 다를까?
깨달아야 비로소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다.
깨닫기 전의 세계는 <자기식自己式 세계>라고 보면 된다. 대체로 종교인들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고 그렇게 한다.
물론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매우 숭고한 마음이다. 그러나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벌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깨달은 사람이 할 일이다.
이렇게 깨달음은 현실을 분명하게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자신의 동정심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깨달은 사람이 눈에 보이는 세계를 <어떻게 대할까?> 하는 차원에서 모든 가르침을 펴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의 세계를 통해 <어떻게 움직일까?> 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깨달음이 어려운 이유 중에 또 하나는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모두 다 욕심을 버리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물론 욕심 때문에 극락에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모두가 욕심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세계는 욕심을 버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욕심의 완성>을 가르쳐야 한다.
<일을 하면 먹을 것이 생긴다>와 <먹을 욕심에 일을 한다>는 같은 말 같지만 나타나는 현실은 다르다.
<무엇을 하면 우주가 현실세계에 어떤 작용으로 드러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지, 아니면 다르게 나타나는지> 그 원리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우주법宇宙法이라 한다.
깨달은 사람은 특별난 능력을 쓸 수 있다. 사실은 누구나 모두 쓰고 있는 힘이지만, 깨닫지 못하면 쓸데없는 망상으로 그 힘을 소진한다.
하지만 깨달으면 그 힘을 원하는 곳에만 써서 특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능력을 『싸이파워Psy-Power』라 한다.
원하는 대로 현실세계에 창조하는 능력이다.
깨달음은 우리 마음이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상태를 <해탈>혹은 <열반>이라고 말한다.
결국 마음이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를 알게 되면 그 이후의 작용에 얽매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열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시대는 <이 세상에 만족 못할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어,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현실에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울러 <현실의 만족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끔 가르치고,그리고 성취할 수 있는 <작용의 세계>를 터득하여 욕심이 아닌 풍요를 지향하는 눈부신 미래를 실현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깨달음이다.
2013년 6월 素 空 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