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소금>은 이처럼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 망국민의 설움을 겪고 있던 조선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여주면서 이런 불합리한 사회를 뒤엎기 위해 총을 들고 일어선 항일 유격대와 그에 대한 민중의 감정을 암시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다. 당시 일제는 항일유격대를 끊임없이 공비라고 공격해대고 있었다. 봉식 어머니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풍문으로 듣던 것과는 다르게 실생활에서 자신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오히려 신뢰감있는 목소리로 다가온 반면 일제의 순사가 소금짐을 뺏아가자 그녀의 인식은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작품에서 이런 과정은 매우 암시적으로만 제시되어 있다.
강경애는 간도 지방 조선 민중의 궁핍한 삶과 그러한 삶을 강요하는 억압세력, 그 세력에 맞서 싸우는 항일운동세력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그들을 형상화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간도 지방의 정세변화는 강경애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소금>이 대표적인데, 1930년대 초의 최성기 이후 항일무장조직이 점차 간도 지방에서 패퇴함에 따른 뒷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1910년 장연으로 이주 성장. 1921년 평양 숭의여학교 입학. 동맹휴학 사건으로 퇴학. 서울 동덕여학교 편입. 1924년 『금성』지에 시 「책 한 권」 발표.
장연에서 야학 개설. 근우회 활동. 1929년 중국 간도에서 방랑생활. 1931년 조선일보에 단편 『파금』 발표. 간도 용정으로 이주. 이후 서울과 장연 왕래. 북향 동인 가담. 1939년 조선일보 간도 지국장. 장연으로 귀향. 1944년 신병 악화로 사망.
『혜성』지에 장편 『어머니와 딸』 연재. 1934년 동아일보에 장편 『인간 문제』 연재. 중편 『소금』 등 발표. 1936년 단편 『지하촌』, 『산남』 등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