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
★★★171회 나오키상 후보작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존엄은 스스로 되찾아야 해!”
참는 대신, 웃으며 되갚아 주는 여자들의 이야기
‘아무튼 가차 없다! 페이지를 펼쳤다면 마지막에 누구도 방관자가 될 수 없다.’
- 마키메 마나부, 소설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모루》의 작가
살다 보면 억울한 순간이 있다. 다 알고도 넘어가야 했던 말, 애써 무시한 시선, 괜찮은 척했던 밤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이젠 참지 말까?”
올요미모노 신인상과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연달아 수상하고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서점 대상과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며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작가로 자리 잡은 유즈키 아사코. 그녀는 특히 여성들이 처한 사회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섬세한 심리 묘사가 주특기다. 유즈키 아사코의 신작 《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에서도 그녀의 장점은 빛을 발하며 많은 독자에게 공감과 지지를 끌어냈다.
이 책은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소통의 단절 속에서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여섯 편을 모은 단편집이다. ‘진상’ 라멘 평론가를 상대로 한 SNS 복수극, 시골 소녀가 꿈꾸는 베이커리,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혼자 버텨야 했던 임산부, 공동 주택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섯 여자의 반격 작전까지, 모두가 가슴속에 꾹꾹 눌러 참았던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복수는 통쾌하기보단 따뜻하고, 격렬하기보단 담담하며, 무겁기보단 감동적이고, 묘하게도 경쾌하다.
작가는 ‘복수’를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존엄을 되찾는 과정’으로 그려낸다. 이런 이야기를 그녀가 누구보다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었던 건, 사회 초년생 때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계약직 생활로 버티며 현장에서 부딪히고 흔들리는 보통 사람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 사회적 편견을 주제로 꾸준히 글을 써온 경험이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만들어낸 덕분이다.
이 책에는 히어로가 등장하지 않는다. 거창한 동기도, 드라마틱한 구출도 없다. 그저 나를 나답게 지키기 위해 애쓰는 평범한 사람들의 작고 단단한 선택이 이어진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조용히 마음을 흔든다.
제171회 나오키상 후보작에 오른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내가 진짜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일까?”
디지털이 가져온 새로운 단절 속에서
누군가가 대신 규정해 놓은 ‘나’를 벗어나
내 손으로 다시 쓰는 이야기
자기의 행동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말 한마디, 시선 하나가 나를 정의해 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 말은 종종 무심코, 아무 악의 없이 던져진 것이지만, 그 가벼움은 어떤 이에게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무게가 된다. 말보다 오래 남는 상처는, 때때로 그 말이 틀렸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반박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그렇게, 묵묵히 견디는 법을 배워 왔다.
유즈키 아사코의 단편집 《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는 바로 그 침묵의 순간에 말을 건넨다. 단단히 마음먹은 복수도, 들끓는 분노도 아니다. 이 책에 담긴 여섯 편의 이야기는 다만 “이제는 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확실한 목소리로 전한다. 시골 우동집에서 베이커리 창업을 꿈꾸는 프리터족, 임신과 팬데믹 속에서 고립된 싱글 맘, 아이 키우는 엄마 여섯 명이 벌이는 반격 작전,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살아남은 잡화점, 댓글 하나로 관계가 뒤바뀐 유튜버와 래퍼의 이야기까지. 각기 다른 인물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흔들리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를 위한, 우리에 의한
여섯 개의 작고 단단한 반격,
유쾌 통쾌한 복수!
첫 번째로 수록된 단편 〈라멘 평론가 사절〉은, 바로 그런 순간들에 복수를 넘어 ‘존엄을 회복하는 일’에 관해 말하는 작품이다. ‘라멘 무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평론가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방패 삼아 자신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는 동시에 사람들의 존재마저 가볍게 재단한다. X젠더의 직원에게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군”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에게 모유 수유를 희화화하며, 게이 커플을 몰래 촬영해 SNS에 올린다. 그의 리뷰는 사실상 타인의 존엄을 침범해서 완성한 기록인 셈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 가해를 폭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상처 입은 피해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숨는 대신 서로를 찾아낸다. 그리고 함께, 조용하고 정밀한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감정을 쏟아내는 대신, 상대에게 잘못을 정확히 인식시키는 길을 택한다. 그 복수는 응징이라기보다 회복이고, 선언이라기보다 존엄을 되찾는 하나의 과정이다. 읽는 이에게 남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해방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잠시 숨을 쉬는 것 같은, 조용하고 단단한 해방감이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건 진짜 네가 원하는 이름이야?”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에 스스로를 맞추려 한 적이 있다면, 이 질문 앞에서 고개를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어떤 말로 정의되든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조심스럽고도 단단한 가능성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의 인물들은 모두가 조금씩 다르게 흔들린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멈추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작고 단단한 걸음을 내디딘다. 그리고 독자에게도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넨다. 지금의 나를, 조금 더 나답게 지켜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