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 - 최불암 텔레세이
출간 배경
재작년 겨울 어느 날, 최불암은 《샘터》 편집장과 인터뷰를 마치고 술을 한 잔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래도 그의 지나온 날들이 화제가 되었는데 최불암은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40년 동안, TV나 연극, 영화를 통해 보여줄 수 없었던 숨겨둔 이야기들을 자연스레 풀어놓았다. “선생님, 그런 화면 밖 이야기들을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겁니다.”
엉겁결에 출간 제의를 받고 최불암은 며칠 동안 고민에 빠졌다. 배우의 인생을 글로 쓴다? “파~”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안방극장의 대명사가 된 그는 한때 저 유명한 ‘최불암 시리즈’를 통해 변함없는 가치도, 인정할 만한 권위도 없는 세태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한 시대의 코드가 되기도 했다. 오래전에 개인적인 신변잡기를 모은 글이 있었지만 정색을 하고 최불암을 말한 책은 없었다. 연기자란 평생 다른 사람의 삶을 대리하는 것이니 책으로 묶을 ‘자신의 이야기’가 따로 있겠냐고, 오히려 꿈 깨듯 독자들의 실망이 더 클 거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 그가 마침내 책을 내기로 결심한 데는 연기자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그와 함께해 준 관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픈 속뜻이 담겨 있다. 오늘의 최불암이 있기까지 소리 없는 격려와 용기를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는 마음으로.
그리운 남자, 캡틴 박
《그대 그리고 나》를 준비할 때이다. 시놉시스를 건네받은 최불암 선생께서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이해할 만 했다. 이미 《전원일기》의 김 회장 역을 10년 넘게 하면서 모범적 가장으로,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안팎으로 존경 받으며 살아왔는데, 일시에 늙은 바람둥이라니. 듣기만 해도 무안한 듯 최 선생님은 얼른 얼굴을 돌려버리셨다. 그리고 끝내 거절하시면 어떡하지 했는데 어쨌거나 박 선장이 되어주셨고, 일단 시작하자 역할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감동적일만큼 각별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누구 앞에서라도 무릎 꿇을 수 있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낼 수도 있는 투박하지만 진한 부정 父情 을 가진 아버지. 흠 많은 인간이면서도 끝내 사람의 얼굴을 잃지 않은 한 남자를 그리고 싶었던 내 의도는 충족되었고 그래서 캡틴 박은 양촌리 김 회장과 더불어 내게 지금도 그리운 남자이다. _ ‘내가 본 최불암’ 김정수,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