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요, 투우사여
1980년대 칠레의 시가지 풍경은 같은 시기 한국과 무척 닮아 있다.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독재자가 있었고, 그에 맞선 민주 세력의 시위가 점점 거세졌다. 『두려워요, 투우사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카를로스는 이 풍경에 속한 사람이다. 독재에 맞서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려 하는 이 20대 청년은 역사가 사랑하는 부류의 인물이다. 반면에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로카는 역사가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 드랙퀸에서 은퇴한 그녀는 부잣집 사모님들의 자수 주문을 받아 먹고사는 중이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는 늙어서 한물간 게이로, 이제 진심으로는커녕 빈말로라도 사랑한다고 말해 줄 사람을 만나지 못하리라 확신하고 있다. 민중과 민주를 숭앙하느라 바빴던 역사가 애써 모른척했던 작은 세계 안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저물어가던 사람. 오직 사랑만으로 채워진 이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슬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소설 내내 로카가 꿈꾸는 단 하나의 목표, 즉 카를로스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기에는 그와 그녀의 삶이 애초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카를로스는 지하 저항 단체의 회합 장소를 제공하는 로카에게 늘 감사를 표하고, 거기에서 시작된 우정을 점점 더 키워 가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애정 공세를 장난스레 받아넘길 뿐이다. 로카는 카를로스와 자신이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채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서 카를로스를 사랑한다. 상대가 점잖게 흘려 버리는 짝사랑을 스스럼없이 수행한다. 그 씩씩함이 이 소설의 기쁨이자 슬픔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