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희망 사회주의 - 사회주의의 과거, 미래에 관한 마이클 해링턴의 대표작
사회주의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
-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예견하고, 사회주의 운동의 방향을 제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는 여전히 자유와 정의를 이뤄내기 위한 희망이다.”
이 책은 미국의 저명한 사회주의자이자, 사회 운동가, 작가, 교수였던 마이클 해링턴이 암으로 투병 중이던 기간에 쓴 마지막 노작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의 인생 회고록쯤으로 보면 오산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시민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고민,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통찰, 그리고 미래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해링턴은 사회주의의 본질을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토대 위에서 펼치려 했고, 미국 정치의 전통과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에서 신념을 일구어내려 했다. 만약, 이 책이 1980년대에 출간되었다면, 저자는 베른슈타인에 버금가는 수정주의자로 낙인 찍혔을 것이다. 하지만 긴 터널을 지나온 한국 진보 운동의 초라한 현실에서 볼 때, 이제는 마이클 해링턴이란 한 사회주의자의 고뇌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김민웅 교수(성공회대)는 감수의 글에서, “사회주의 논쟁은 유럽보다는, 사상적으로나 사회 분위기상 우리가 그간 많이 복사해온 미국의 경우를 통해 돌아본다면 얻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이 책의 차별점
1. 자본주의의 본고장 미국에서 쓴 사회주의 이념, 운동사
미국은 자유시장경제가 가장 꽃피운 나라라는 인식이 있다. 그런 탓에 미국에서 어떤 사회주의적 발상이나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이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았다.
2. 저자 마이클 해링턴(Michael Harrington)은 정치 사상가이자 운동가
저자가 실무와 이론에 모두 해박하다. 국내 소개된 책 혹은 국내 저자가 쓴 책들은 이 두 가지를 충족하는 경우가 드물다. 학자가 쓴 책은 지나치게 이론적이어서 정교함이 떨어지고, 활동가가 쓴 책은 구체성은 있으나 객관성에는 취약하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점을 상당 부분 충족한다.
3. 현재처럼 체제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컸던 시기를 다루었음
이 책이 쓰인 시기, 또 주로 다룬 시기는 주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케인스주의 복지국가의 전성기와 그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 이 시기는 두 차례의 큰 변곡점(세계대전과 복지국가 몰락)을 통해 이념과 사상, 운동 진영에 깊은 성찰과 반성이 일어났다. 한마디로 진지한 사상가 운동가들 고민이 많았던 시기이다. (이 책이 출간되고 한 해 뒤 소련 몰락!)
4. 사회 변화에 대한 용기를 준다.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한국사회는 압축성장의 사회이다. 압축 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이념의 중첩이 계속 일어난다. 일제 청산도 해결하지 못하고 새로운 물결을 맞는 식. 그런데, 이 책은 이념의 변천이 수십, 수백 년에 걸쳐서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념의 변화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셈이다. 몰역사적인 한국 사회에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일종의 사회 민주적 키워드-를 제시하면서도 굉장히 우파적인 정치를 펴나간다. 진보 진영도 치우치기는 마찬가지. 트로츠키식 극좌파부터, 온건한 사회민주주의적 흐름, 친북적인 주사파까지.
자본주의의 본고장 미국에서 사회주의의 희망을 품다
마이클 해링턴은 한국사회에서 낯설다. 하지만 그는 이미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30대의 나이에 미국 진보운동에서 최고로 명석한 지식인이자 뛰어난 조직 운동가로 자리매김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소수자의 고독을 오랫동안 겪기도 했다. 보수주의자에게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기존의 교조적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이단자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그의 유산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더는 숨길 수 없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그 위기가 확인되는 지점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구좌파의 몰락과 신좌파의 소멸 뒤에 남은 것은,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이라는 현실과 그 폭력적 결과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마이클 해링턴의 육성은 마치 지금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고스란히 일깨우고 있는 듯하다.
“사회주의는 왜곡되었을 뿐이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민주화와 함께 간다
민주주의의 근본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사회주의는 전체주의의 씨앗을 뿌릴 수밖에 없으며, 공화정의 전통과 철학이 함께 작동하지 못하는 사회주의는 시민사회의 주체적 성장보다는 국가주의와 기득권 정치에만 기대는 문제를 낳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는 것은 우리에게 진보의 시대를 어떻게 구상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한다.
계급이라는 틀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던 기존의 구좌파는 마이클 해링턴이 자유주의적 경향을 가졌다고 비판했고, 노동운동이 부르주아적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고 본 신좌파는 이제 혁명의 중심은 학생을 비롯한 빈민과 여성운동가 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이클 해링턴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고 그것을 풀어낼 조직적 역량을 가진 노동자들을 중심에서 배제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이와 동시에 시민들의 일상에 드러나는 모순을 일상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회주의 운동이 아니고서는 실패한다고 믿었다.
마르크스의 혁명보다 유토피아주의식 점진주의로─
마르크스는 공장이 세워지면서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극단화된 자본주의 속에서 일거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노사 분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독일식 사회주의는 산업화 과정에서 게토로 소외되었던 독일만의 특수한 상황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독 사상가 카우츠키의 이론이 전 세계에 퍼졌던 것이 사회주의 운동의 대중화에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단일한 계급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이 존재한다. 관심사도 경제 영역을 넘어서 성, 인권, 환경, 문화 등으로 확대되었다. 마이클 해링턴은 오히려 21세기에는 구성원들 간에 타협을 통해서 점진적인 개선을 해나가는 유토피아주의를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런 사례로서, 스웨덴의 노사가 서로의 실존 권력을 인정하고 타협해간 경험을 지적한다.
사회주의에 대한 마이클 해링턴의 3가지 가설
▶첫 번째, 그간의 사회주의 운동은 여러 오류를 드러냈고, 사회주의에 대한 열정도 많이 식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움직여 온 힘은 앞으로도 여전히 자유와 정의를 이뤄 내기 위한 주요한 희망이다.
▶두 번째, 자유와 정의가 사회 경제적 구조의 지배를 받는다. 17세기 전후의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 경제적 변화가 오늘날의 정치적 현실을 만들어 낸 것처럼,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사회 경제 구조가 민중에 의해 통제되지 못한다면, 지금 누리는 정도의 자유와 정의도 파괴될 수 있다.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써 나가자
저자는 20세기의 사회주의가 왜 비틀거렸는지 원인을 찾아간다.
▶마르크스부터 시작했던 사회주의에 대한 모호한 정의, ▶단일한 노동 계급의 부재, ▶소련의 일당 독재 등 “가짜 사회주의”의 난립, ▶사회주의로의 이행 모델 부재,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자본의 국제화 등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결국 사회주의가 공상적 가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저자는 심각한 오류와 모호함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사회주의 운동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자유와 정의가 그나마 확보되었다고 역설한다. 더 나아가서, 자유와 정의가 여기까지밖에 실현되지 못한 이유, 즉 그 패배의 역사에서 이제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마도 우리가 사는 ‘느린 종말 시대’에 대한 도전은 비전을 가진 점진적인 성격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그는 지난 백 년간의 투쟁을 통해 급진적으로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점진적으로는 변화시켜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펼쳐질 사회주의자들의 운동 또한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사람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은 결코 낡은 일이 아니다. 도리어 오늘날이야말로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과 정치적 의지를 펼치는 일이 더 큰 의미가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