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분이다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분이다

저자
박정자 지음
출판사
기파랑(기파랑에크리)
출판일
2020-01-07
등록일
2025-06-26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15MB
공급사
알라딘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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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읽다 보면 푹 빠지는 ‘자본주의 알쓸신잡’

아이폰이나 갤럭시를 쓰면서, 이런 신통한 기계를 만들어 준 스티브 잡스나 이재용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그럴 필요도, 그렇다고 그들을 증오할 필요도 없다. 이미 200년도 더 전에 애덤 스미스(1723~1790)가 한 말이다.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술도가,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류애가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이 얻을 이익을 말해 줄 뿐이다. (107쪽, 『국부론』 제1권에서 인용)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분이다』(박정자 저, 기파랑, 2020)라는 조금 긴 책제목은 애덤 스미스의 이 구절(1776)에서 나왔다. 책은 스미스의 자본주의, 에드먼드 버크(1729~1797)의 보수주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의 (신)자유주의를 날줄 삼고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장자크 루소 등 근대의 대(大)사상가들을 씨줄 삼아 ‘자유로운 개인’ 탄생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인문학 대중화에 앞장서 온 저자는 여기에 글로벌 자본주의의 문을 연 대항해 시대, 옛 독일ㆍ프랑스와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반면교사, 부(富)에 대한 조선 선비들의 내로남불, 허생(許生)의 통찰과 오해, 미국의 테일러리즘, 스위스와 핀란드의 실패한 ‘기본소득제’, 가장 최근의 인공지능(AI)ㆍ기그(gig)ㆍ공유경제까지,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자본주의 알쓸신잡’을 깨알같이 쏟아 낸다.


일상이 자본주의다

골목길에 편의점 불빛만 있어도 갑자기 골목은 생기가 돈다. 그 생동감의 중심에 상업이 있다. 상업은 귀한 것을 더 귀하게 만들고,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만들며, 모든 사람들을 밝고 명랑하게 만든다. (131쪽)

옛 멕시코 땅인 텍사스 초원의 스페인식 이름 붙은 쓸쓸한 교회들을 둘러보며, 기울어 가는 허울뿐인 제국의 황제 고종이 커피를 마시던 덕수궁 정관헌을 바라보며 저자는 ‘여기에 카페 하나 있었더라면’ 하고 아쉬워한다. 파리 샹젤리제와 서울 광화문광장의 결정적인 차이도 ‘카페, 식당, 상점의 유무’에 있다(114-117쪽). 상업의 활기가 사람 삶의 활기다.
상업을 ‘도둑질하는 근본’이라며 대놓고 천시한(그러면서 퇴계 이황이나 다산 정약용 같은 사대부들도 뒤로는 이재理財에 열을 올렸다) 조선의 종말은 망국과, “형언할 수 없이 슬프면서도 기묘한 광경”으로 유럽 여행자의 눈에 비친 경성이었다. 근대 초 상업을 천시한 독일과 일본의 종말은 전체주의와 패전이었다. 군국(軍國) 독일과 일본을 무너뜨린 것은 상업과 자본주의의 나라 영국과 미국이었고,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고 환골탈태한 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한국, 일본, 독일이다. 초등학교 때 6ㆍ25를 겪은 저자의 기억에도 그 어려운 시절 가족의 끼니를 해결한 것은 자생적인 시장이었다. 상점들 불 꺼진 어두운 거리, 기업이 사라진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디스토피아다.


참다운 진보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지금 한국은 사회주의 국가다.”
막상 책의 첫 문장은 암울하다. 정부가 민간에 시시콜콜 개입하는 계획경제 사회라서, 개인은 말살되고 집단주의가 기승을 부려서, 집권층이 뒤로는 사리(私利) 추구에 여념 없으면서 말로는 돈을 천시해서, 정부가 공짜 돈으로 ‘자립 의지 없는 노예’를 양산하고 있어서(4-9쪽). 이런 사회의 이름을 저자는 차마 직접 붙이지 못한다. 하이에크는 그것을 ‘노예의 길’(79쪽), ‘전체주의 사회’(262쪽)라고 불렀다며.
개인 없는 집단주의의 폐해를 웅변하는 것은 혁명의 시대 프랑스의 광기(狂氣)다. 공짜 돈이 국민을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치고도 마약처럼 다시 좌파 포퓰리즘으로 회귀한 것이 지금의 아르헨티나다.
유일한 치료약은 개인 자유의 회복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을 인정하므로 보수주의이고,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기에 자유주의와 통한다.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와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에 따로 한 챕터씩을 할애한 이유다. 자본주의ㆍ보수주의ㆍ자유주의의 삼위일체만이 유일한 진보적 사상이고, 개인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에 가장 겸손하고도 현실적인 사상이다. 좌파가 내거는 ‘진보’란 한국만의 기형적 현상이고, 그들의 진보는 참칭(僭稱)일 뿐이라는 지적(263-269쪽)이 많은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간 세상의 모든 원리가 시장 메커니즘이다. 교환의 원리도 그렇고, 무질서한 듯해도 정교한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완벽을 지향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그렇다. 시장을 부정하는 이념은 결코 세상을 지배할 수 없다. 상업을 천시하는 좌파가 결코 우파를 이길 수 없는 이유이다.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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