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 자유롭고 유쾌한 삶을 위한 17가지 과학적 태도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이 들려주는 과학적 삶의 태도와 자세.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등 많은 대중적 저술과 창의적 과학관 운영을 통해 과학과 대중 사이의 장벽을 낮춰온 이정모 관장이 이번에는 한층 내밀하고 깊은 시선으로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은 과학이 준 교훈을 지렛대로 삼아 좀 더 자유롭고 유쾌한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과학기술은 인류의 삶에서 기아, 질병, 빈곤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켜주었다. 저자는 지금의 과학기술을 있게 한 과학적 사고와 태도가 우리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이 가르쳐준 여러 교훈을 17가지 개념으로 정리하여 제시한다. 실패, 질문, 모험심, 개방성, 공감, 겸손, 협력 등 17가지 개념은 과학적 태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한층 행복하게 확장시켜줄 삶의 자세이기도 하다.
특유의 유쾌함으로 독자를 무장해제시켜온 저자의 익살은 여전하며 온갖 세상살이를 과학적 시각으로 거침없이 분석하는 호방함이 펄펄 뛰는 책이다. 더하여 검증된 과학의 경험을 통해 좋은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과학적 태도와 자세는 얼마든지 배우고 삶에 응용할 수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과 함께라면.
답이 없는 시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최근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으로 부임한 저자는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파고든다. 그동안 선진국이라는 모범 답안을 더 싸게, 더 빨리 모방하기 위해 숨가쁘게 경쟁하며 근면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이제 낡은 관성과 관행의 벽 안에 갇혀 있다. 산업화시대의 방식을 버려야 하는 건 알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다. 저자는 수많은 가치가 충돌하는 이 혼란의 시대를 돌파하는 방법을 '과학적 태도'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저자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동력으로서의 과학적 태도론을 제시한다. 정답이 없는 과학처럼,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자신만의 잠정적인 답을 만들어나가고, 각자의 답을 존중하고 어울려 사는 명랑한 사회를 이루는 길을 제시한다.
인생도, 과학도 틀리는 게 당연
좋은 직장, 정년 퇴직이라는 인생 경로가 사라진 오늘날, 우리는 삶의 목표와 의미를 독자적으로 찾아나가야 한다. 저자는 이를 위한 중요한 과학적 태도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실패를 자산으로 여기는 태도다. 입시, 실험 등에서 갖가지 실패를 경험했던 저자는 돌이켜보니 실패가 자산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노벨상은 실패한 연구자들에게 주는 보답이라고까지 말한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조사해보니 핵심 논문을 생산하는 데만 평균 17년이 걸렸으며, 수십 년간 실패, 실패, 실패, 작은 성공… 같은 패턴을 무수히 반복해왔다고 강조한다(16쪽). 반면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성공률이 무려 95%가 넘는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한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주제를 연구한다는 것이다. 이공계 박사의 75%가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 어떻게 모험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저자는 쓸데없는 것을 잔뜩 연구해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에게는 쓸데없는 일을 거듭하는 경험이 필요하고, 쓸모 없는 일을 용인해주는 사회가 필요하다(72쪽). 어차피 인생에는 실패라는 무수히 많은 지뢰가 깔려 있다. 실패하지 않는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수천 개의 관측기기, 수백억짜리 슈퍼컴퓨터로 전문가들이 예측한 일기예보도 틀리기 마련이다. 과학도, 인생도 틀리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둘째,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다. 저자는 믿는 것은 쉽지만, 의심하고 또 의심하기란 힘들다고 말한다. 메신저(부모님, 선생님, 선배 등등)가 좋고, 메시지가 좋을 경우에 특히 그렇다. 하지만 권위를 의심하고, 스승의 그림자를 마구마구 밟으라고 독려한다(32쪽). 나만의 '질문'을 만들어 세상이라는 강 위에 놓고 징검다리 삼아 총총 밟고 건너라고 권유한다. 세상을 바꾼 것은 부모 말 지지리도 안 듣는 사고뭉치들이라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당면한 위기를 자기만의 모험심, 호기심, 개방성으로 돌파해내려 한 사람, 동물, 로봇의 다양한 성공과 실패 사례를 들려주면서 자기만의 창조성과 추진력으로 극복하는 과정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설득한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측정해보니
저자는 측정, 실험과 관찰, 검증 등 과학적 방법을 우리 삶에 적용할 것을 권한다. 참새조차도 '관찰'을 통해 허수아비나 맹금류 모양의 연 따위가 위협이 안 된다는 걸 알아차리고 황금 들녘의 익어가는 벼를 편안하게 쪼아먹는다. 참새는 불필요한 일을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삶에 방해가 되는 습관이 없기 때문이다(59쪽).
반면 매년 인간의 뛰어난 상상력을 겨냥한 괴담, 음모론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빵이 아니라 식용유를 떠먹는 수준이라는 대왕 카스테라, 독이 들어 있다는 백신 주사, 살충제 범벅이라는 달걀 등 과장되거나 악의적인 소문 때문에 무고한 이들이 불편을 겪고 생계의 터전을 잃기도 한다. 저자는 중학교 때 배운 질량보존의 법칙만 떠올렸어도 식용유를 700ml나 들이부었는데 겨우 500g짜리 카스테라가 나온다고 주장하는 방송이 전파를 타지는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95~96쪽). 수백만 명의 영아들에게 비소가 들어간 백신 주사를 접종했다는 자극적인 스토리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는 사이 우리가 먹는 물, 쌀에도 비소가 들어 있다는 시시한 과학적 사실은 잊혀진다(98쪽).
과학계에서는 어떤 주장을 하려면 지난한 검증을 각오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받으려면 데이터를 공유하고 관찰, 실험 방법을 낱낱이 공개해야 하며 교차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문제가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인지 계산해보고, 탐색하고, 해결함으로써 효능감과 안정감을 찾도록 도울 것이다.
협력을 위한 과학
이제 과학은 일개인의 천재성에 의존하는 단계를 뛰어넘었다. 과학적 발전은 다수의 협력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그 어떤 집단보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함께 협력한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전 세계 2백여 명의 과학자들이 8개의 전파망원경으로 지구만 한 가상의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을 관측했다(247~248쪽). 기상 분야는 전 세계의 협력체계가 가장 먼저 확립되었다. 같은 시간에, 같은 방법으로 기상을 관측하고 이 값을 교환한다. 심지어 전쟁 중인 국가들 사이에도 정보를 주고받는다(20쪽).
그렇기에 저자는 과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학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기존의 의견을 기꺼이 바꾼다. 과학 지식은 계속 쌓이고 변하기에 과학자는 새로운 사실을 접하면 기존의 연구 방법에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은 현재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우리가 왜 존재해야 하며, 지금 당장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목적지는 어디인지, 목적지로 가는 길에 고난과 역경, 문제와 사고가 쌓여 있지만 어떻게 하면 자유롭고 유쾌하게 함께 웃으며 뛰어넘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