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춘
한국 근대문학 발생에 있어 서구문학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이상협의 작품세계
<헤왕성><눈물>등이 그 대표작이다.
서울 남산 밑 쌍나뭇골 막바지에 오막살이 초가집 하나이 올연이 서 있는데, 오래 수리를 하지 못하여 장원(牆垣)이 모두 무너지고 지붕 위에는 잡풀이 무성하였으나, 천연(天然)의 경치는 가히 사진 한 장 박을 만하니, 집 뒤에는 수놓은 병풍과 같은 남산이 둘려 있고, 앞에는 경성(京城)의 시가가 눈 아래 깔리었으며, 집 주위에는 여러 가지 꽃이 만발하여 고운 빛을 자랑하는데, 호접은 꽃 속으로 날아다니며 춘색(春色)을 희롱하고, 황조는 나무 틈으로 왕래하며 벗을 불러 만물이 다 때를 만난듯 서로 즐기어 세상 사람에게 복됨을 자랑하는 것도 같으며, 조물주에게 봄 낸 것을 사례하는 것도 같은데, 홀연히 그 집으로서 열 대여섯 살쯤 된 계집아이 하나이 나오더니 여러 가지 붉고 흰 꽃가지를 꺾어 가지고 견물생심으로 무슨 생각이 났던지 별안간에 두 눈에서 주옥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흑흑 느끼더니, 행주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으며 큰길로 쑥 나서서 죽동으로, 수표교를 건너 종로로, 황토현 큰길을 지나 광화문 뒤로돌아 바로 옥동으로 향하여 가더라.
이 계집아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쌍나뭇골서 주머니끈?허리띠?대님 등속을 짜아 생활하는 김 선달의 딸 계순이니, 연방 십륙에 가세(家勢)가 빈한하여 조석이 여일치 못함으로써, 비록 여자의 몸일지라도 그 부모의 빈곤하여 고생함을 보고 분연히 일어나 주야로 몸이 곤고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만분지 일이라도 부모의 생애를 보조할까 하여 스스로 이 참서 집 종이 되어 갔더라.
이 때에 잠깐 틈을 얻어 부모를 보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니,
-본문 중에서
호 하몽(何夢). 서울 출생. 보성고보를 거쳐 관립한성법어학교(官立漢城法語學校)를 수료, 1909년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대학[慶應大學]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1912년 귀국하여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입사하여 1916년부터 편집장으로 재직, 1919년 3 ·1운동 후 퇴사하였다. 이듬해 《동아일보(東亞日報)》가 창간되자 28세로 편집국장에 취임, 1923년 9월 일본 간토지진[關東地震] 때에는 단독 도일하여 관동대학살 사건을 취재하였다.
1924년 조선일보사(朝群日報社) 편집고문을 지내고, 1926년 《중외일보(中外日報)》를 창간했으며, 1929년 《중외일보》를 《중앙일보(中央日報)》로 속간, 1934년에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부사장에 취임하였다가 1941년에 사퇴하고, 8·15광복 후 미군정이 《매일신보》를 접수할 때 다시 부사장이 되었다. 매일신보사 기자 시절에 외국소설의 번안작업을 했고, 창작소설도 발표하였다. 작품에 《해왕성(海王星)》 《재봉춘(再逢春)》 《정부원(貞婦怨)》 《눈물》 《무궁화》 등이 있고, 편저에 《경기도지(京畿道誌)》(3권, 1954)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