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효석의 작품 세계는 두 가지 경향으로 대별된다. 우선 동반자적 경향으로 계급 문학을 옹호하는 성격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러한 초기 소설의 사회적인 관심과 현실에 대한 비판 때문에 그는 카프 진영으로부터 이른바 동반자작가라 불리게 되었다.
이효석의 동반자적 작품들은 계급 문학에서 표방하는 사상보다는 주로 러시아라는 異國에 대한 동경, 즉 이국 취향이 나타나 있다.
계급 문학이 위축되는 시기에 이효석의 작품 세계도 변모한다. 즉 낭만주의적 자연 친화의 세계로 변화한다. 1932년경부터 효석은 초기의 경향문학적 요소를 탈피하고 그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는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향토적, 성적 모티브를 중심으로 한 특이한 작품 세계를 시적 문체로 승화시킨 소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꿈이나 아닌가 하여 재희는 이야기책을 다시 쳐들었다. 한편의 자서전적 소설이 그를 놀라게 하였다. 소설가 준보는 바로 학교 때의 그 아이가 아니었던가. 소설 속의 이야기는 바로 그들의 어릴 때 일이 아니었던가. 무지개를 본 듯이 마음이 뛰놀았다. 현혹한 느낌에 가슴이 산란하다.
소년은 동무들의 놀림을 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소문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소녀와의 거리는 도리어 멀어지는 것 같았다. 소년이 비석을 칠 때에는 소녀의 그림자는 안 보였고 소녀가 자세를 받을 때에는 소년은 그자리를 물러났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술래잡기를 할 때에도 두 사람의 자태는 빛과 그림자같이 서로 어긋났다. 결국 손목 한번 탐탁하게 못 쥐어보고 소년은 점점 고집스러워만 졌다. 쥐알 봉수가 소녀에게는 도리어 가깝게 어른거렸다. 소락소락 말을 걸고 손을 쥐고 하는 것을 소년은 무척 부러워하고 미워하였다. 그렇게 못하는 자기의 고집스러운 성질을 슬퍼하면서 동무들의 부당한 놀림을 억울하게 여길 뿐이었다.
재희가 준보에게 터놓고 다정히 못굴었음을 뉘우치게 된 것은 그와 작별한 후였다. 채봉이가 자별스럽게 준보를 위함을 알고 마음이 편편치 못하였으나 그와 떨오지고 보니 그것도 쓸데없는 걱정임을 깨달았다. 준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결국 느티나무 밑이었다. 몸에 급작스러운 변화가 와서 어머니 앞에 부끄러운 생각을 하고 누워 있는 동안에 준보도 고달픈 병으로 학교를 쉬었다. 명예로운 졸업식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준보는 병에서 일어나자 바로 서울로 공부를 떠난 까닭이었다.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불현 듯이 솟았다.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소설가. 호는 가산. 사숙에서 한학을 배우고 1913년 평창 보통학교에 입학, 1925년 경성 제일 고보를 거쳐 이듬해 경성 제대 법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이 해 동대학의 조선인 학생회 문우회에 참가하여 동회에서 발간하는 기관지 문우에 시를 발표하고 매일 신보에 시와 단편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28년 조선 지광에 『기우』,『행진곡』등을 발표하고 이듬해 동교를 졸업, 1931년 잠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근무하다가 경성 농업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경성 시절을 통해 실의에 잠기기는 했으나 이 무렵부터 세상일과 인연을 단절, 본격적인 작품 생활에 전념하여 한때의 동반 작가라는 것을 청산했다. 이 해 구인회에 참여했고, 이 무렵『돈』,『수탉』등 향토를 무대로 한 일련의 작품을 내놓았다.
1934년 평양 숭실 전문학교 교수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에 전념, 1936년『분녀』를 발표하여 그 특유의 성 모럴을 제시하고 『산』,『들』과 같은 작품에서 향토적 서정이 넘치는 작품 세계를 보여 주었다. 또한 그 해 한국 현대 단편 소설의 대표작의 하나인 『메밀꽃 필 무렵』을 조광에 발표하였다.
1934년을 전후하여 작품 경향이 변모, 소설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 올리는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7년『개살구』『낙엽기』, 1938년 『장미 병들다』등 후기에 해당하는 작품을 발표, 초기의 향토적이니 소설과는 달이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세계를 지향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평소 매스필드나 체호프,입센,토마스 만을 섭렵하면서 문학관의 정립을 추구했다. 『화분』같은 작품에 짙게 반영되어 있는 또 하나의 특질인 자연적인 상태의 성적 개방은 인간성에의 회귀를 의미하는데, 유교적인 상태에 유폐된 한국 소설의 차원을 넘어선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장편에 『화분』『벽공 무한』『창공』등이 있으나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탁월한 세계를 제시, 다나편 자가가로서 뚜렷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했다. 1942년 『봄의상』『풀잎』『일요일』등의 단편을 발표한 것을 마지막으로 5월 25일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향리인 진부에 안장되었다.
작품에는 상기 외에 『하루빈』『약령기』『일기』『노령근해』『상륙』『북국통신』『오리온과 능금』『가을과 서정』『성수부』『성화』『북국춘신』『사냥』『석류』『천사와 산문시』『독백』『시월에 피는 능금꽃』『성찬』『마음에 남는 풍경』『삽화』『계절』『인간 산문』『가을과 사냥』『해바라기』『거리의 목가』『막』『소라』『부록』『공상 구락부』『향수』『산정』『일표의 공능』『황제』『여수』『은은한 빛』『창공』『소복과 청자』『산협』『라오 고원의 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