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의 비극
이성애자 분들, 정말 괜찮으신가요?
이 시대의 사랑·연애·결혼을 유쾌하고 날카롭게 해부한 문제작, 드디어 한국어판 출간!
★ 2021 프로즈 어워드 (PROSE Award) 문화인류학·사회학 부문 수상작
★ 2021 람다문학상 (Lambda Literary Award) LGBTQ 연구 부문 최종 후보작
★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추천
■ ‘왜 내 연애는 로코가 아니라 스릴러일까?’
미디어가 가르쳐주지 않는 ‘남녀 불행의 메커니즘’
연인 관계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드라마는 남녀가 온갖 역경을 딛고 결합하는 과정을 찬미하며, 그것이 곧 ‘행복’의 완성이라고 속삭인다. 많은 이성애자들이 “남녀는 원래 다르다”거나 “맞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난 것”이라는 답으로 위안을 삼고, 자기 계발 산업이 만들어 낸 수조 원 규모의 시장(연애 코치, 픽업 아티스트 부트캠프, ‘남자의 마음을 읽는 법’류의 베스트셀러들)에서 불안을 달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묻는다. 이 모든 교정(repair)과 처방이 쏟아지는데도 왜 이성애 관계는 나아지지 않는가?
저자는 이 비극의 원인이 이성애 문화 자체에 구조적으로 내장된 여성혐오에 있다고 진단한다. 이를 여성혐오의 역설(misogyny paradox)이라 명명하며 현대 이성애가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동시에 경멸해 온 모순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을 꼬집는다. 사랑과 혐오가 공존하는 이 구조 안에서 여성은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끊임없이 대상화되고, 남성은 여성을 원하면서도 진정한 동반자로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남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성별 이분법적 신화를 토대로 미디어는 남성과 여성을 화성인과 금성인처럼 타자화한다. 이러한 프레임 안에서 남녀는 공략해야 할 대상이나 견뎌야 할 숙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재산 이전과 출산을 위한 제도였던 결혼이 ‘사랑에 기반한 동반자 관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부장제는 조용히 그 형태만 바꿔 살아남았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결혼은 무덤이다’라는 식의 농담들이 사실은 이성애라는 제도가 가진 구조적 결함을 방증한다고 말한다. 미디어가 전시하는 낭만적 환상의 이면에는,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제도적 안정감을 위해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비극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19세기 이전부터 미투(#MeToo) 이후까지 진행되어 온 이 비극이 일부 나쁜 남성의 성격 결함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내면화한 문화의 문제라는 것을 날카롭게 폭로한다.
■ “이성애자 분들, 정말 괜찮으신가요?”
냉소를 넘어선 상생의 로드맵: 역설적인 ‘이성애 관계 심폐소생술’
《이성애의 비극》이라는 제목만 보면 이 책이 이성애 자체를 조롱 혹은 부정하거나 폐기할 것을 주장할 것 같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논지는 오히려 역설적이다. 워드는 이성애 관계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현재까지의 가부장적 이성애 모델을 완전히 해체하고, 그 자리에 ‘깊은 이성애’라는 신규 운영체제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역설이 이 책을 단순한 페미니즘 비판서와 구별되게 만드는 지점이다. 작가 스스로 퀴어 여성임을 밝히면서도, 이성애자 독자들을 향해 냉소가 아닌 재치 넘치는 위로와 진지한 연대의 시선을 보낸다.
저자가 제시하는 ‘깊은 이성애’는 여성혐오를 걷어낸 자리에 진정한 상호 존중과 욕망이 공존하는 관계를 놓자는 제안이다. 그 모델로 워드는 퀴어 문화를 주목한다. 단순히 퀴어 관계를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 권력의 고정된 각본 없이 관계를 끊임없이 협상하고 설계해 온 퀴어 커뮤니티의 실천적 지혜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라는 낡은 역할 모델에서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관계를 재설계할 수 있다는 것, 욕망과 존중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 그것은 퀴어 문화가 이미 증명해 온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 로드맵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워드가 뜬구름만 잡는 당위론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픽업 아티스트의 수업을 직접 참관하고, 결혼 지침서와 연애 코치의 언어를 촘촘히 분석하며, 이성애자 커플들의 실제 언어와 관행 속에서 변화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성애 관계 속의 당사자들을 가해자나 피해자로 단순화하지 않고, 모두가 불완전한 문화 속에서 저마다의 행복을 찾으려 분투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그 시선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자를 방어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힘이다.
■ 지금 한국 사회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 ‘젠더 갈등’과 ‘연애 기피’의 교착 상태를 깰 텍스트
2024년 일본어판 출간 당시 “언제까지 케어만을 바라는 남성과 소모적인 연애를 지속할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화두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이 책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쓰였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도 놀라울 만큼 직접적으로 읽힌다. 유례없는 ‘젠더 갈등’과 ‘연애·결혼 기피 현상’의 한복판에 서 있는 한국 사회의 2030 세대에게 이성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낭만의 대상이 아닌, 잠재적 가해자 혹은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인 워드의 메시지는 단순한 해외 문화 비평을 넘어 하나의 사회 분석처럼 작동한다. 한국의 변화는 기존의 이성애 각본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안전하지도 않다는 집단적 각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여성들은 더 이상 독박 육아와 감정 노동이 당연시되는 이성애 관계에 진입하려 하지 않으며, 남성들 역시 권위주의적 가장의 무게와 여성들의 변화된 요구 사이에서 메타 인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성애의 비극》은 이 갈등의 원인이 특정 성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물려받은 가부장적 이성애라는 ‘구식 시스템’의 수명이 끝났기 때문임을 보여주며, 혐오와 방어기제로 점철된 현재의 젠더 담론은 결국 서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 뿐임을 증명한다.
나아가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혐오와 고립을 넘어선 제3의 길을 제시한다. ‘남vs여’ 구도를 자극하기보다, 현재의 관계 문화 자체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며 서로를 향한 공격을 멈추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적 각본 자체를 함께 비판할 수 있다면, 지금의 교착 상태는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친밀감을 발명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지금의 이성애 문화를 그대로 유지한 채 관계 기피 현상을 탓하거나 출산율 하락을 걱정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성애를 살리고 싶다면, 그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이 책이 지금 한국 사회에 유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내에 페미니즘 독서 열풍을 선도한 독보적인 ‘젠더·페미니즘 전문 번역가’ 노지양의 탁월한 번역과, 한국 퀴어 문화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인권운동가 한채윤의 다정한 해제로 더욱 풍성해진 《이성애의 비극》 한국어판이 라우더북스의 첫 번역서로 출간된다. 2026서울국제도서전 기간에 맞춰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제인 워드는 국내 퀴어 페미니즘 연구자들과의 세미나 및 일반 독자 대상의 북토크 등을 통해 한국 독자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한국 사회가 연애와 친밀성의 미래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게 될 그 자리에서 제인 워드가 선사할 독보적 유머와 삶의 지혜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