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화학 - 100개의 물질로 읽는 생명과 우주, 인류의 미래
세상은 화학으로 쓰여 있다!
태초의 우주로부터 시작된 암호를 풀어
별과 생명의 탄생, 인류와 문명의 진화를 거쳐
다시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는 100가지 화학 이야기
2024년, 인공지능(AI) 전문가들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연이어 수상해 세상이 떠들썩했다. 실험실이 아닌 컴퓨터상에서 과학 연구가 이뤄지는 새 시대의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데이터로 결과를 예측하는 시대가 와도, 역설적으로 ‘물질’ 자체에 대한 본질적 이해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데이터의 환각(Hallucination)을 가려내는 일도, 연구 결과에 해석과 가치를 부여하는 일도, 결국은 물질의 기본 원리를 꿰뚫고 있는 인간의 통찰에 달렸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화학》은 100개의 화학물질로 우주의 탄생부터 현대 문명과 인류의 미래까지를 관통해 서술한다. 원시우주의 수소 원자부터 첨단소재 탄소나노튜브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물질은 독립적으로 읽기 쉽게 구성되었지만, 단순한 백과사전식 나열이 아니다. 서사적 연결성을 고려해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독자가 자연스럽게 더 큰 그림을 이해하도록 설계되었다. 원초적 우주에서 생겨난 원자에서 출발하여(1부), 지구의 암석과 대기 그리고 생명체를 구성하는 분자(2~3부), 인류 문명과 산업을 견인해 온 합성물(4~5부), 나아가 미래 우주 시대를 추동하는 신소재(6부)까지, 100가지 물질의 과학적 원리와 결과물을 촘촘하게 톺아보는 가운데 생명과 우주를 연결하는 빅히스토리가 한눈에 그려진다.
저자 김성수는 수많은 화학물질 가운데 100개만 골라 세상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일이 “나침반 없이 남극의 광활한 설원 위에 홀로 덩그러니 놓인” 듯 곤혹스러웠다면서도, ‘물질세계’에 푹 빠져 살아온 천생 화학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어떠한 학문 분야와도 연계하고 소통할 수 있는 화학이야말로 진정한 ‘중심 과학’이라고 생각한다”는 저자를 따라 세상을 종횡무진 누빈 독자들은 어느덧 AI 시대가 두렵지 않은 중심축을 갖추게 될 것이다.
돌멩이와 바닷물, 대기를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생명체는 어떤 구조로 움직이고 유지하고 살아갈까?
인류는 화학에서 어떤 기회와 즐거움을 찾아냈을까?
어떠한 학문 분야와도 연계하고 소통할 수 있는
화학이야말로 진정한 ‘중심 과학’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화학》은 “화학은 별에서 시작된다”는 명제(《화학이란 무엇인가?》를 쓴 피터 앳킨스의 말)로 시작한다. 음식·약품·신소재 등 일상에 관한 궁금증에서 출발하는 생활 밀착형 화학책들과 사뭇 다르며, 교과서식으로 무기화학·유기화학·분석화학 같은 전문 하위분야를 나열하지도 않는다. 최초의 원자에서 출발해 100가지 화학물질을 간결한 연대기식 구성으로 다루지만, 자연사적·과학사적 맥락 속에서 인간 사회와의 연결 고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우주-지구-생명-문명-산업-미래를 잇는 서사를 완성한다.
연쇄적인 핵합성과 초신성, 우주 공간 전체에서 벌어지는 역동적인 물질 간 화합의 결과는 문자 그대로 극적이었다. 그 결과 무한한 공간의 일부에서 새로운 별이 만들어졌고 … 그 별이 내뿜는 빛에 기대어 사는 식물이 지구상에 나타났으며, 그 식물이 만들어 내는 물질을 먹고사는 동물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는 화학물질을 매개로 서로 소통해 왔다.
물리학이 다루는 우주의 기원은 원자와 분자의 탄생으로 연결되고, 지구과학이 설명하는 환경은 광물과 대기와 해수의 성분으로 구체화된다. 생물학의 생명 현상은 고분자와 효소의 대사로 환원되고, 역사학과 사회학과 경제학이 다루는 문명과 전쟁과 산업은 천연자원과 합성물 등의 에너지와 기술로 재해석된다. 화학이 모든 자연과학을 연결하는 중심 과학이라는 저자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듯 탄탄하고 설득력 있다.
많은 사람이 암호처럼 난해한 주기율표로 화학을 기억한다. 혹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우연한 발견이나 실패담의 역사로 접근하는 데 그치곤 한다. 이 책은 분절적으로 보이는 물질의 원리를 통합적 세계관으로 추적하며 현상을 이해해 보는, 색다른 화학 독법을 제공한다. 독자는 화학을 ‘외워야 할 지식’이 아니라 ‘이해의 틀’로 다시 보게 된다.
물질의 원리와 현상을 분석하는 화학적 사고법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각 장에서 물질을 들여다보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핵융합/전자껍질/공유결합/산화와 환원/평형 등 화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 수소/철/엽록소/포도당/암모니아/실리콘 등 각각의 물질을 살펴본 후 → 별의 진화/생명 유지/환경 문제/기술 혁신 등의 현상을 설명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3부(모든 생명체는 별의 자손이다)에서는 셀룰로스/엽록소/포도당/ATP/신경전달물질 등 생명 유지에 핵심적인 분자들을 소개하며, “생물이란 결국 탄생하여 소멸할 때까지 능동적인 화학반응을 통해 끊임없이 외부와 화학물질을 주고받는 거대하고 정교한 분자 조립체”라는 화학적 관점으로 생명 현상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4부와 5부에서는 청동/강철/수크로스/시멘트 같은 물질문명부터 의약품/염료/플라스틱 같은 합성물의 빛과 그늘까지, 화학의 성취와 위험을 균형 있게 다루며 현대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학문으로 주목하기도 한다.
인류는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구상 어떠한 생명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모험을 벌인다. 바로 존재한 적 없던 새로운 물질을 화학 법칙을 기반으로 새로이 합성하는 일이었다. … 덕분에 인류 사회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갖가지 화학물질의 축복으로 전례 없이 팽창했다. 하지만 이는 인류 사회를 파멸로 이끄는 전쟁과 환경 오염 같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렇듯 자연이 따르는 보편적 규칙이 있고, 그 원리가 구현된 형태가 물질이며, 그 토대 위에 우리가 관찰하고 경험하는 세계가 존재한다. 이를 거꾸로 보면, “왜 어떠한 현상이 벌어지는가?”라는 질문에 관해 보이지 않는 원리와 눈에 보이는 물질을 종합해 해답을 구하는 학문이 바로 화학인 셈이다.
1985년 남극에 심각한 오존층 소실이 확인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오존층 파괴 문제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비화되었다. 전 지구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되었고 … 이는 가입국들이 프레온 가스를 비롯한 96종의 오존층 파괴 물질의 생산과 소비를 차츰 줄이다가 마침내 금지하도록 설계되었다. 다행히도 최근 보고에 따르면 2005년부터 오존층 파괴 물질 농도가 낮아지면서 … 2035년이면 남극에서 더 이상 오존 감소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아이디어를 넘어 물질을 설계하는 능력이
AI 시대 화학의 경쟁력
마지막 6부는 반도체/2차전지/케블라/폴리아크릴로나이트릴 등 미래를 선도할 핵심 물질을 다루며 화학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같은 원리라도 어떤 물질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형태가 어떻게 달리 구현되는지, 화학 기술이 왜 문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인지 알 수 있다.
오늘날 쓰이는 전지의 대부분은 화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는 화학 전지다. 그러나 이때 산화-환원 반응은 거꾸로 돌릴 수 없는 비가역반응이라 한번 사용을 마치면 다시 사용할 수 없어서 버려야 했다. 이를 1차전지라고 부른다. … 반면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여 거듭 사용할 수 있는 전지를 2차전지라 부르며, 이는 쓰레기 문제도 줄고 편리하게 재사용할 수 있어 관련 연구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 2차전지 발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병은 가장 가벼운 금속인 리튬을 전하 운반체로 활용한 리튬 이온 전지다.
이처럼 미래 사회를 바꾸는 기술은 아이디어 이전에, 물질의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에너지 저장, 반도체 성능, 신약 개발, 친환경 공정 같은 미래의 수많은 문제에 관해, AI 알고리즘이 방대한 가능성을 제안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현실의 물질로 구현하는 일은 화학의 역할일 터,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화학》이 ‘최소한의’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