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숨 - 해양 포유류의 흑인 페미니즘 수업
★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활동가 추천
★ 2022 미국 와이팅 재단 논픽션 부문 수상작
“그렇게 거대하고 망설임 없는 사랑을 본 적 있나요? 우리가 그 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요?”
알렉시스 폴린 검스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수백 시간 동안 해양 친족들을 관찰했다. 노예무역 시기에 ‘중간 항로’에서 죽은 수많은 흑인 선조와 마찬가지로 해양 포유류는 학살당하는 존재이자, 학살 이후에도 살아남은 존재이다. 해양 포유류는 퀴어하고, 사나우며, 서로를 보호하는 복잡한 생물이다. 또한 인간이 만든 착취와 군사화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저명한 흑인 퀴어 페미니스트 연구자이자 시인인 알렉시스 폴린 검스는 해양 포유류와 흑인이 어떻게 살해당하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우리 곁에 남은 유산은 무엇인지, 우리와 그들의 호흡이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챌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씨라이프파크에 포획된 수많은 돌고래의 이른 죽음, 대단한 학습능력과 창의적인 공연으로 명성을 얻은 돌고래들에게서 ‘당신’을 본다. 1741년 발견된 바다 포유류가 가죽과 털을 노린 바다 사냥꾼들 때문에 27년 만에 멸종한 사례를 다루며 ‘발견되는 것의 위험함’을 말한다. 이러한 통찰은 노예로 살았던 선조들을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책은 해양 포유류의 삶에서 무언가를 배우자는 제안보다는 해양 포유류가 되자는 주장에 가깝다. 저자는 해양 포유류, 혹은 당신을 지칭할 때, 그 지칭어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하며 인간에 대한 정의(definition)를 새롭게 한다. 인간에 대한 정의는 이미 지배와 분리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구와 새롭게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이들이라면 반드시 만나야 할 책이다.
이 책은 우리를 위해 쓰였다. “매일 뉴스를 보며 눈물을 참기 어려운 사람들, 자연과 단절되었음을 느끼는 사람들, 삶에서 자연을 중시하는 사람들, 기후위기를 우려하는 우리, 오랫동안 소셜 미디어를 끊고 평화롭길 원하는 우리, 해양 포유류 사진을 보는 우리의 행동이 경제 정의를 위한 일과 완전히 별개라고 생각했던 당신과 나를 위해 썼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글이다.”
2023 윈덤캠벨상 수상 시인, 알렉시스 폴린 검스 작가의 책이 한국어로 처음 소개된다
와이팅 재단 논픽션 부문 수상작
해양 포유류에게 배우는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법
알렉시스 폴린 검스의 책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다. 출판사 접촉면의 첫 책인 『떠오르는 숨: 해양 포유류의 흑인 페미니즘 수업』은 흑인 퀴어 페미니스트인 저자가 해양 포유류로부터 흑인을 포함한 인간종의 생존을 모색하는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Undrowned(익사하지 않는)로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며 오랫동안 생존해 온 해양 포유류를 통해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차별로 인해 말 그대로 숨이 막히는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종의 생존을 모색한다.
저자가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슬픔이라는 감정을 다루는 과정에서 해양 포유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생존’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해양 포유류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생존’이란 단순히 살아남아 있는 상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우리로 이어진 과거들과의 관계 속에 놓여있기에, 우리는 생존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해양 포유류와 흑인을 학살하는 세계에서 살아남아 ‘우리’가 된 것이 무엇인지를 살핀다.
검스는 SNS를 통해 일종의 명상 에세이처럼 해양 포유류에 관한 짧은 글을 한 편씩 올리기 시작하였고, 팔로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저자가 현재 4만 명의 팔로워가 있는 ‘인플루언서’가 된 바탕에 이 게시물 연재가 있었다. 대안적 담론을 주로 출간해 온 미국의 AK Press는 이 원고를 자사의 창발적 전략 시리즈(Emergent Strategy Series)로 출간하자고 제안하였고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저자는 해양 포유류를 통해 기후위기와 차별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연습하자고 제안한다. 다만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로 해양 포유류에 공감할 것을 요청하는 책이 아님을 강조한다. “해양 포유류 친족이 익사하지 않기에 일가견이 있다는 걸” 알기에 이들을 관찰하고 겸허하게 배우며 “노예제, 포획, 분리, 지배의 전철을 밟으며 숨 쉴 수 없는 대기를 계속 만들어 가는 대신, 다른 호흡법을 연습하기 위한 가능성으로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고래를 포함한 해양 포유류가 퀴어하고, 맹렬하면서도 서로를 보호하고, 복잡한 갈등과 협력의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또한 인간이 바다와 바다 생물을 착취하며 군사 시설을 바다에 세우는 동안에도 해양 포유류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해양 포유류의 습성을 흑인 페미니즘의 통찰과 유려하게 통합하며 드넓은 질문과 상상의 공간을 펼쳐 보이는 한 권의 논픽션을 만들어냈다. 바다에서 죽은 고래와 흑인 노예의 숨이 우리의 숨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수족관에 포획된 고래가 출산하는 장면을 투옥된 흑인 인권 운동가의 출산 장면과 병치하고, 돌고래의 이동을 대서양 노예 무역에서 흑인들이 수송된 ‘이산’의 역사와 함께 살핀다.
생태학적 지식, 사회 정의에 대한 열정, 시적 실험이 어우러진 독보적 작품
해양 포유류의 시선으로 차별과 폭력의 역사를 이해하다
일반적으로 해양 포유류에는 ‘스텔러바다소(Steller’s sea cow)’ ‘아르누부리고래(Arnoux’s beaked whale)’ 등 이들을 착취한 최초 발견자 혹은 사냥꾼의 이름이 붙어 있다. 저자는 식민주의적 이름 사용을 피하기 위해 각 개체의 서식지나 특징을 부각하는 이름이나 학명, 해당 포유류와 가장 친밀하고 오래된 관계를 맺고 있는 선주민의 언어로 된 이름 등을 사용한다. 예컨대 ‘스텔러바다소’는 ‘하이드로다말리스 기가스(Hydrodamalis gigas)’라는 학명으로, ‘아르누부리고래’는 ‘남방이빨네개고래(the southern four-toothed beaked whale)’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것이 당사자를 존중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시인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언어적 실험을 수행한다. 책에서 저자가 ‘당신’이라 부르는 존재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때로는 해양 포유류를 가리키는 것 같고, 때로는 독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또한 해양 포유류의 성별을 표현할 때 인간에게 종종 쓰이는 것처럼 ‘지정성별여성’, ‘지정성별남성’이라는 수식어를 쓴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위계나 분리, 구획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에 의한 자의적인 성별이분법 체제에 반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번역자는 저자가 해양 포유류를 언급할 때 그녀(she), 그(he)라고 표현한 것들을 그대로 ‘그녀’, ‘그’로 옮김으로써 인간과 비인간동물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위기에 빠진 지구 환경을 사회 정의의 문제와 연결
해양 포유류에 대한 흑인 페미니스트의 통찰
저명한 페미니스트 철학자 사라 아메드는 본인의 저서 『페미니스트 킬조이』(아르테)에서 ‘페미니스트 킬조이를 위한 읽을거리’의 하나로 이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아메드는 이 책을 “독창적이고 선견지명으로 가득한 텍스트는 지배체제가 억압하고 유지되기 위해 작동함을, 그리고 공간과 숨 쉴 구멍을 만드는 데 생존 프로젝트의 의의가 있음을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반비)과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봄알람) 등을 쓴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현미는 “생태 위기를 멈추고자 하는 모든 이의 필독서”라고 이 책을 추천했고, 한국에서 고래 보호 활동을 가장 활발히 펼치고 있는 비영리단체 ‘핫핑크돌핀스’ 활동가 조약골은 “(이 책이) 차별과 혐오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창의적이고 빛나는 통찰을 통해 이 책은 2022년 와이팅 재단 논픽션 부문상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저자는 우리에게 고래처럼 생각하고, 고래처럼 호흡하고, 고래처럼 저항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인종, 성별, 종의 경계를 넘어서는 연대와 해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다. 이 책은 흑인 페미니즘, 환경 정의, 그리고 급진적 생태학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의 필독서가 될 것이다. 한 해의 절반을 숨 가쁘게 살아온 독자들이 여름휴가에 가져갈 책으로도 적격이다. 긴장을 풀고, 숨을 깊이 쉬며, 저자의 안내를 따라 해양 포유류의 세계로 가보자. 그곳에 우리의 먼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인 해양 포유류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