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있을까 - 프리랜서의 절망과 희망 편
13년 차 프리랜서 그림 작가의
작업자로서의 고민과 장사꾼으로서의 계산
작가와 자영업자 사이에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방법
이자람, 황선우 추천!
작가이자 자영업자라는 두 개의 자아
사실 ‘일’은 그 자체로 괴롭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어떨까? 13년 차 프리랜서 그림 작가로 활동하며 단행본 삽화 작업은 물론, 공공기관이나 다양한 상업 브랜드와 협업하며 인지도를 쌓아온 엄주 작가는 말한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더 괴롭다”고. 그런데 마치 “건빵 봉지 속 별사탕처럼 괴로움 속에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이상한 오기가 생겨 자꾸 목이 말라도 건빵을 먹듯이 괴로운 일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고 말이다. 그는 이와 같이 재능을 돈으로 바꾸는 여정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첫 에세이에 담아냈다.
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있을까.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물음은 작가이자 자영업자라는 분리된 두 개의 자아로 살아온 저자가 줄곧 마음에 품고 있던 의문이기도 하다.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도 나이고 그것을 파는 사람도 나라고 할 때, 과연 그 창작물의 값어치를 어떻게 매겨야 할까. 너무 세련되게 협상을 하자니 스스로가 장사꾼 같고, 그렇다고 작업에 비해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억울한 마음에 밤잠을 설친다. 그렇지만 프리랜서 창작자는 곧 자영업자나 마찬가지기에, 미래의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그 두 개의 자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감을 찾아야 한다.
프리랜서의 절망과 희망
창작자와 자영업자, 이 두 가지 자아에 맞추어 책은 크게 1부 ‘작업자로 살아가기’와 2부 ‘작가로 살아가기’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부 ‘작업자로 살아가기’에서는 어디에 소속되지 않은 채로 어떻게 나를 지키며 일할 수 있을지 13년 차 프리랜서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고민하고 궁리해본다.
우리나라는 ‘빨리 빨리’의 민족답게 일정이 급박하거나 업무 체계가 없는 경우도 많아, 외주 작가가 활동하기에 수월한 환경이 아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되도록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련해두기를 추천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미리 만들어둔 ‘의뢰서’를 통해 업무 제안을 받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성격 및 예산, 작업물의 사용 방식과 기간, 미팅 여부와 마감일, 정산 비용 및 지급 일자, 프로젝트 중단 시 작업비 지불 등의 구체적인 항목을 포함한 의뢰서 양식을 통해 업무 의뢰를 받으면, 사전에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파악함으로써 불안도를 줄일 수 있다. 계약서 작성 또한 번거롭더라도 업무 착수 전에 반드시 챙겨야 하는 과정이다.
물론 의뢰 업체 측에 엄정함을 구하는 만큼, 작업자로서도 기본을 충실히 지켜야만 소위 ‘잘나가는 프리랜서’가 될 수 있다. 일단 시간 약속만 잘 지켜도 기본은 하는데, 생각보다 극히 일부만 이를 지킨다. 13년 프리랜서 생활 중 단 한 번도 마감을 놓친 적이 없다는 저자가 소개하는 안전한 마감을 위한 지침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 밖에도 슬럼프를 극복하는 과정, 불안정한 업무 일정의 스트레스를 견디는 방법 등 프리랜서의 멘털 관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건강하게 오래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재능을 돈으로 바꾸기까지
무엇보다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이 ‘자기만의 방’이기에, 2부 ‘작가로 살아가기’는 저자가 마음에 꼭 맞는 작업실을 찾기까지의 긴긴 여정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지금의 작업실을 구해 사업자를 내고 본격적으로 수입을 궁리하게 되면서, 외주 수입과 함께 작품을 상품화해 판매하는 방식, 즉 굿즈 판매로 수익을 늘려보고자 했다. 지류나 패브릭을 이용해 포스터, 책갈피, 가방, 티셔츠 등 다양한 상품을 제작해왔는데, 여전히 무엇이 옳은지 판단이 쉽지가 않다. 예상보다 제작 과정이 까다롭기도 하고, 막상 만들었는데 마진이 남지 않거나 판매 수량 예측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상업 작업을 하는 창작자라면 대중성을 두고 늘 고민하게 마련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좁은 대한민국 땅에서 한국인들은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베끼며 빠르게 질려하기 때문이다”.(p.139) 나와 대중이 좋아하는 지점을 맞추기 위해 저자는 마치 낚시꾼이 낚싯줄을 던지듯 꾸준히 SNS에 작업물을 올렸다고 한다. 공들여 그린 작품보다 5분 만에 완성한 그림이 반응이 더 좋을 때도 있었고, 성에 차지 않았던 그림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렇게 구한 교집합 안에서 작업하면 안정적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위험하기도 하기에, 한편으로 개인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도전적인 작업도 병행하며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고자 애쓴다.
고유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탐구가 우선되어야 하고, 그 세계가 어느 정도 단단해지고 나면 자연스레 세상과 타인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지는데, 그러다 보면 작업물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청소년 도서의 표지화로 그린 소녀의 모습이 혹시 또래에게 외모 강박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지, 그림에서 무의식적으로 지운 존재는 없는지…. 다양한 사람 그리고 그만큼의 다양한 삶이 있다는 걸 인지하는 과정에서 작업의 폭이 넓어질 수 있기에, 저자는 이러한 사유와 고민이 창작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결국 창작으로 먹고사는 일에 관한 허심탄회한 기록이자, 그것을 더 잘해내고 싶고 오래도록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분투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