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만의 방
대한민국 서울에서 베트남 작은 도시까지의 거리만큼 떨어지고 나서야
내 앞에 도착한 ‘엄마’라는 새로운 사람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4년 전 가을, 쉰이 넘은 엄마가 베트남으로 혼자 일을 하러 떠났다. 어렸을 때는 물론, 결혼 이후로도 자신의 방이란 걸 가져본 적 없던 엄마에게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방이 생겼다. 가족이 있는 중년 여성이 자신의 일을 하러 해외로 나간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떠나는 그보다 남겨지는 가족을 걱정했다. 그 걱정은 엄마의 몫이 아니었다. 8남매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난 엄마는 살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돈을 벌었다. 그리고 이른 나이에 가족을 이뤘고 한평생 치열하고 부지런하게 살았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뒤로한 채 살아왔던 삶, 지금부터는 엄마 걱정만을 하는 삶을 살기를 바랐다. 엄마가 해외에서 홀로 일한다는 건 큰 도전이었지만,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 며느리인 역할에서 벗어나 오롯이 혼자인 시간을 누려보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햇수로 5년이 흐르면서, 엄마의 삶은 조금씩 변했다. 평생 짊어지고 해내야 했던 역할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모습을 되찾았다. 엄마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흐를지 모르는 게 삶이라지만
이제는 쉽게 슬픔으로 미끄러지지 않을 것 같다고.
혹시나 또다시 미끄러져 버린대도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고.
그것은 구불구불한 생을 딛고 섰던 그의 삶이자 자신의 삶으로 가르쳐준 용기였다.”
처음 외국에, 그것도 일을 하러 나간 엄마는 텃세를 부리는 현지 직원과의 마찰도 잠시, 새로운 환경에 차근차근 적응해간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딸은 새삼스러운 감정이 든다.
“엄마도 이랬을까. 애타는 마음을 가만히 손에 쥐고서 낯선 환경 속에 던져진 이를 묵묵히 지켜보는 일. 염려와 응원을 눈가에 주렁주렁 달고 내 뒷모습을 바라봤을 사람. 이제 역할을 바꾸어 내가 엄마를 바라본다. 염려와 응원을 주렁주렁 달고서.”(「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중에서)
엄마와 난생처음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그간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 뭐든 해내고야마는 사람이었던 엄마가 실은 나처럼 미루는 것도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잘 정돈된 집과 결근 한 번 없이 일하던 그의 삶이 그저 잘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해내야만 했던 사람이라서 였을까 싶어” 마음이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또 ‘엄마’ 옆에 붙는 ‘여행’은 항상 누군가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는데, 베트남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예약하고 다녀온 여행담을 이야기하는 엄마의 용기에 새삼 감탄한다. 이제 엄마의 여행에는 ‘언젠가’ 대신 ‘언제든’이 붙고, 엄마가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걸 지켜본다.
이후 베트남으로 가 함께 여행을 하며 엄마는 무엇이든 알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인 걸 목격하게 된 김그래는 내가 보는 엄마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엄마의 고유한 세계를 입체적으로 느낀다. 그제야 엄마의 그림자에서 슬픔을 바라보던 시선에서 ‘슬픔’을 지우게 된다.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오롯이 혼자서 누리는 행복도 가져보는 엄마가 눈앞에 있으므로.
이 작품을 그리면서 김그래는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다른 마음, 섭섭함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엄마를 마냥 응원만 하고 싶었는데 비로소 엄마에게서 온전히 독립하지 못한 자신을 깨달았다고. 그를 사랑하는 것과 자신과 엄마를 동일시하는 것은 다른 것임을 알아차리고 적당한 거리를 두기로 결심한다. 자기만의 삶을 잘 살아내는 엄마를 바라보며, 자신도 씩씩한 눈을 하고 이번 생을 잘 살아낼 것이라 다짐하며.
어쩌면 평생 이토록 다면적인 서로를 발견하게 되는 관계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늘 곁에 있으니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고정되어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문득 세상에서 가장 낯선 존재가 되는 게 가족이니까. 그러니 미처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지금부터 알아가면 된다. 엄마의 딸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그의 친구로서 곁에 선 김그래처럼.
「투비컨티뉴드」 독자 리뷰 중에서
저희 엄마는 결혼 후에 하던 일을 그만두시고 전업주부로 30년을 사셨어요. 엄마, 며느리, 아내로 사느라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국내여행도 거의 못 가셨는데 이제 많이 아프셔서 가실 수가 없네요... 작가님 어머님 이야기 그려주셔서 너무 뭉클해요. 감사합니다. - minty
혼자만의 방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슬픈 말인지 처음 알았어요.. ㅠㅠ 그치만 희망적이라 좋아요 - 메티즌
귀여운 그림체와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 그러고 보니, 제 엄마도 오롯이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겠다 싶어요. - 사소한
‘잘 견뎌보자’ 외국에 처음 나가던 날 막막했던 기분이 되살아나서 먹먹해지네요. 어머님 이야기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sculder
퇴근길에 우연히 읽다가 눈물이 났어요. 딸아들 다 키워놓으니 자신의 쓸모가 뭔지 모르겠다고 우울해하시다가, 요새 새로운 공부를 하고 계시는 저희 어머니 생각이 났네요 ㅎㅎ 모든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과 새로운 경험, 용기가 있기를!! -antares6190
엄마와 나의 시간이 바뀐 느낌이 정말 뭉클하네요 ㅠㅠ -kokoekwjd1
해내야만 하는 엄마의 삶. 나도 지금 해내야만 하는 엄마의 삶을 살고 있기에.. 슬프긴 한데 백만 배 공감이 간다 -sunhye77
이렇게 엄마라는 사람을 또 새롭게 보게 돼요! 작가님 덕분에! 찡하다 결국 웃기고 마는 작가님 -81231004
그냥 적응하는 거라는 말이 극복해내야 한다는 말보다 더 현실적인 것 같아 와닿아요 -doit31
나이가 들어갈수록 엄마가 하셨던 말에 점점 더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다르고 십년 뒤에 또다르겠죠? -librairie
엄마 혼자 여행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에 왜 제가 다 뿌듯하고 뭉클하죠.. 우리 엄마 같아 보여 더 그런가봐요 - veronica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