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없다 - 교통사고에서 재난 참사까지,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 《이코노미스트》 《슬레이트》 《포춘》 선정 올해의 책
★ “때때로 우리는 세계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던 방식을 바꿔놓는 책을 만난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 “논픽션 저널리즘의 진수. 이 책은 당신의 사전에서 ‘사고’라는 단어를 영원히 없앨 것이다.” ― 《슬레이트》
★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불평등 문제의 종식을 촉구하는 책. 독자의 눈을 새로 뜨게 하고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 《커커스 리뷰》
★ “이 책은 당신을 분노하게 할 것이고 당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꿔놓을 것이다.” ― 팀 켈리, 저널리스트
★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열어준 문으로 두려워하면서도 용기 있게 나아간 한 저널리스트의 치열한 기록. 저자는 더는 말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을 대신해, 성실하고 집요하게 우리 시대의 죽음을 탐구한다.” ― 장일호, 《시사IN》 기자
이것은 어쩌다 그냥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
‘참사의 나라’에 도착한 한 권의 책
지난 6월 24일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 공장에서 ‘역대 최악’의 공장 화재가 발생했다. 31명의 사상자를 낸 이 참사는 위험물 보관 및 취급에 관한 규제 불이행, 정부의 안전 기준 및 점검 미비, 처벌보다 예방에 중점을 둔 법과 정책 부재 등이 지적되면서, 예견된 참사였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또 화재로 숨진 23명 가운데 18명이 이주노동자(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이고 17명이 여성이며, 이들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험마저 외주화되고 이주화된 산업 현장의 불평등한 조건이 여실히 드러났다. 공장 내부 구조와 언어가 낯설고 필수적인 안전 교육을 받지 못했을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사고’의 위험과 피해가 더 치명적으로 전가된 것이다.
6월 30일은 씨랜드 화재 참사 25주기이기도 하다. 올해 기준 오송 지하차도 참사 1주기, 이태원 참사 2주기, 세월호 참사 10주기, 마우나 리조트 참사 10주기, 대구 지하철 참사 21주기, 씨랜드 참사 25주기, 삼풍백화점 참사 29주기, 성수대교 참사 30주기를 맞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1주기에 여러 외신이 “사임하거나 해임당한 정부 고위 관료는 한 명도 없었다”(로이터), “한국 정부 기관들이 인터뷰 요청을 다 거절했다”(BBC)고 보도했듯, “한국은 변하지 않았다”(타임스). ‘참사의 나라’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은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사고’로, 일하다가 이동하다가 쇼핑하다가 여행하다가 자다가 죽는다. 이런 참사 때마다 위정자들 입에서는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는 말이 무책임하게 나온다. 지난 4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 에는 세월호 참사 분향소 지붕에 적힌 ‘사고’라는 글자가 ‘참사’로 바뀌는 인서트 컷이 나온다. 한국은 ‘사고’가 아니라 ‘참사’로 불리는 것조차 때로 싸워 얻어야만 하는 ‘참사 회피의 나라’이기도 하다.
왜 ‘사고’는 흔한가? 왜 예전보다 많은 사람이 ‘사고’로 죽는가? 왜 가난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고’로 더 죽는가? ‘사고’는 개인의 운이나 책임에 달린 것인가? 왜 “그건 ‘사고’였다”고 말하는가? 왜 ‘사고’에 대해 말하지 않거나 덮으려 하는가? 정말로 ‘사고’는 막을 수 없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는 책 《사고는 없다》(원제: There Are No Accidents)가 때마침 출간되었다.
‘사고’라는 말이 가린 시스템의 위기를 추적하다
유일무이하고 종합적인 탐구
《사고는 없다》는 교통사고부터 산업재해, 재난 참사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고’와 지난 한 세기 동안 벌어진 ‘사고’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사고’라는 말이 어떤 죽음과 손상을 감추고 그것이 반복되게 만드는지를 밝혀내는 책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안전 시스템·부상 예방·위해 감소 문제 전문가, 안전한 거리를 위해 싸워온 활동가인 저자 제시 싱어는 2006년 미국에서 화제가 된 자전거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은 일을 계기로, ‘사고’에 천착하게 되었다. 그는 ‘사고’ 및 위험에 관한 문헌과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의 방대한 데이터를 면밀히 검토하고, 고속도로에서 원자력발전소까지 다양한 현장의 사례를 취재하고, 관련 전문가와 정책 입안자, 활동가, 사고 피해자 및 유가족과 가해자를 인터뷰해 이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은 과실, 조건, 위험, 규모, 낙인, 인종주의, 돈, 비난, 예방, 책무성이라는 10가지 키워드를 연결하고 확장하면서 촘촘하고 풍성한 논의를 펼친다. ‘사고’에 관한 유일무이하고 종합적인 탐구라 할 만한 책이다.
불의의 ‘사고’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사고’라고 부를 때, 누가 위험에 처하고 누가 이득을 보는가
저자는 ‘사고란 없다’고 주장한다. 불의의 ‘사고’라고 불리는 일 대부분이 무작위로 닥치는 게 아니라 예측과 예방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저자는 이 책 바깥에서는 ‘사고’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 ‘사고’로 인한 죽음이나 손상이 “우발적으로 일어나며 예견되거나 예방될 수 없다는 잘못된 암시”를 주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사고’라는 용어가 어떻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호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피해를 방치하며, 재난에 대한 조사를 방해하는지, 어떻게 피해자를 비난하고, 사회적인 분노를 희석시키며, 가해자에 대한 공감까지 유도하는지를 밝혀낸다.
미끄러지는 것은 인간의 과실이지만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는 바닥은 위험한 조건이다. 제한속도를 위반하는 것은 인간의 과실이지만 과속을 하기 좋게 설계된 도로는 위험한 조건이다. 유조선을 몰다 암초에 부딪히는 것은 인간의 과실일 수 있지만 유조선을 모는 사람에게 하루 12시간을 근무하게 한 것은 위험한 조건이다. 이 책이 ‘사고’의 속성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관계가 ‘인적 과실’(실수)과 ‘위험한 조건’(환경)이다. 인간의 과실이 관여하지 않는 사고는 거의 없지만, 위험한 조건이 과실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 사고 예방법은 그런 환경, 곧 조건을 개선하는 일이다. 우리는 “과실을 예상하고 그것이 생사를 가르는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게 할 조건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고치기보다 인적 과실을 탓하는 서사를 유포하는 방법을 택해왔다. 일례로 1910년대 미국 최초의 노동자배상법이 통과되자 고용주나 사업장 소유주는 그에 맞서 ‘사고 유발 경향성이 있는 노동자’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장치 도입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던 자동차 제조사들은 ‘무단횡단자’ 개념을 널리 퍼뜨렸고 ‘운전석의 미치광이’를 비난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저자의 사례 분석은 더 복잡하고 뿌리 깊은 문제로 나아간다. 1991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햄릿의 한 육가공 공장에서 대부분이 흑인 여성인 노동자 25명이 사망한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 공장의 화재 비상구들이 잠겨있었고, 10년 넘게 안전 점검을 회피했던 작업장에서 150건의 안전 위반이 발견됐다. 위험한 노동조건에 저항할 힘이 더 적은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공장 위치를 흑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정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러나 이 사고를 두고 노동자들이 닭고기를 자주 훔쳐 소유주가 공장 문을 잠가뒀다는 루머가 떠돌았고, 이것은 피해자들이 부도덕해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게 됐다. 저자는 이 햄릿 사고를 통해 ‘인적 과실’ 설이 어떻게 시스템의 책임 면피용으로 쓰였는지, 사고 이후 대응과 비난의 방향, 사고 위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피해자의 정체성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나아가 인종·계급·성별에 대한 낙인이 사고에 대한 해석에 미친 영향까지 읽어낸다.
위험과 ‘사고’는 왜 불평등하게 일어나는가
낙인, 인종주의, 돈… 생사를 결정짓는 차별과 불평등
사고의 위험과 피해, 그리고 사고 이후의 비난과 책임은 평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인종·민족·계층·성별에 따라 사고를 당할 확률, 사고로 죽거나 부상을 입을 확률, 사고로 비난과 처벌을 받을 확률이 달라지는 것이다. 가령 여성 신체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차량 충돌 테스트 인형은 차량 사고에서 여성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할 확률을 높인다. 흑인과 라티노 보행자는 백인 보행자에 비해 무단횡단 딱지를 떼일 가능성이 높고, 그들이 차에 치여 사망하는 경우 운전자는 백인을 쳤을 때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 인구 대비 불법 약물 사용자의 비중은 흑인과 백인 모두 비슷하지만, 약물 범죄로 처리돼 수감되는 사람은 흑인이 많다. 저자는 이런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를 수많은 연구와 사례를 들어 체계적으로 드러낸다. 이 차별과 불평등의 지점을 인지하고 바꾸지 않는 한 사고의 진정한 원인을 알아낼 수 없고 오늘날의 수많은 죽음과 손상을 예방하는 길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위기에서도 낙인과 인종주의, 사회적 불평등은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낙인과 차별은 사회가 특정한 종류의 사고가 계속 일어나도록 내버려두게 하는 요인으로, 약물중독에 찍힌 낙인은 약물 과용 사고의 방지책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 약물중독 환자가 오피오이드 해독제인 날록손을 얻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약물 사용을 독려할 수 있다는 편견과 약물 사용자에게 자제력이 없고 의지가 부족하다는 낙인 때문이다. 한편 처방약인 옥시콘틴에 의한 오피오이드 과용이 확산되자 오피오이드 과용으로 사망하는 흑인과 백인의 비율이 처음으로 역전되었다. 옥시콘틴이 병원에 방문 가능한 계층을 위한 것이고, 흑인 환자가 고통에 더 무디고 통증을 덜 느끼리라는 인종주의적 편견이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흑인에게 덜 처방하게 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약물 충동을 관리해 약을 끊는 것을 도와주는 대체제인 부프레놀핀의 경우 흑인의 약물 과용이 훨씬 빠르게 증가하는 중인데도 백인에게 처방될 가능성이 35배 더 높다.
남겨진 우리에게 남겨진 일
“사랑과 분노”의 행동
책에는 ‘사고’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일에 헌신한 이들의 이야기가 여럿 나온다. 자신이 군인 시절 경험한 비행기 추락사고를 계기로 평생에 걸쳐 ‘사고’와 부상의 원리를 연구하고 훗날 자동차 제조사가 도입하게 되는 사상을 최소화하는 안전벨트와 운전대를 고안한 휴 디헤이븐, 미국의 산업재해 급증 시기에 《피츠버그 서베이》라는 사망자 집계를 작성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관점에서 산재를 이야기하는 법을 발명하고,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대규모 재난뿐 아니라 ‘사고’라고 간단히 치부되는 일상적인 재해를 조명하고, 이런 데이터를 발판 삼아 훗날 노동자배상법의 기초가 되는 뉴욕주의 개혁법을 처음 발효시킨 저널리스트이자 사회학자 크리스털 이스트먼, 원자력발전 업계의 고위직이었다가 회사 내 방사능 노출 가능성을 보고했다가 내부 고발자가 되어 해고당한 뒤 원자력발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아내 매기와 함께 핵 재앙 전문가로 헌신하게 된 아르니 군더슨, ‘스위스 치즈 모델’이라는 개념적 틀을 마련해 대규모 사고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정립한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 도로 설계 시스템과 제한속도 설정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 교통공학자 에릭 덤보, 운전자의 과실보다 자동차 자체의 결함이 문제임을 밝히며 자동차 제조사에 맞서 자동차 산업의 민낯을 고발한 랠프 네이더 등이다. ‘사고’ 위험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득실만 따지며 책임을 회피해 온 기득권자들에 의해 작동되는 시스템의 공백을 채워온 이들이다.
뉴욕에서 ‘안전한거리를위한가족들’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저자는 교통사고를 당한 적 있거나 교통사고로 누군가를 잃은 단체 회원들에 관해 들려준다. 에이미 코언의 아들은 열두 살 때 길을 건너다가 멈춰준 차를 추월하려던 밴에 치여 숨졌다. 에이미는 주 정부에 제한속도를 낮추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조직했고, 2년 뒤 그 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는 낮아진 제한속도 덕에 살았다. 주디스 코틱은 딸이 버스에 치여 죽은 장소에서 딸 사망 3년 전에도 1년 뒤에도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디스는 시위와 추념식을 조직했고 2년 만에 시 당국은 이곳의 차량 접근을 제한하기 위해 도로 하나를 폐쇄하고 교차로를 재설계하기로 했다. 그 후로 아무도 그곳에서 죽지 않았다. 저자는 에이미와 주디스가 한 일을 “사랑과 분노”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남겨진 이들에게 남겨진 일은, 죽은 사람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사회를 향해 책무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측 가능하고 예방 가능한 비극에서 벗어나
책임으로 나아가는 법
이 책은 ‘사고’의 증가 추세를 막기 위해 개인과 사회가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 즉 생명을 구하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을 제시한다. 핵심은 사고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예방에 집중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낙상 사고사 증가를 막고자 병원에서 낙상 사고가 발생할 시 병원을 처벌하는 조취를 취하자, 의료진이 환자의 거동 자체를 제한하면서 퇴원 후 낙상이 더 빈발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또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은 사람들이 사고의 비용을 물도록 책무성의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기업과 규제 기관이 책무성의 제도를 갖추게 해야 한다. 규제 완화가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을, 기업과 당국이 아닌 시민이,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이 떠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모든 대책을 마련할 때는 사고로 가장 많이 죽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초점을 둬야 한다.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은 타인의 고통과 자신과의 거리를 두게 하고 타인이 겪은 ‘사고’를 그의 안 좋은 행동이나 취약한 성품의 결과로 여기게 한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을 자초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게 일어난 ‘사고’에 대해 아무 일도 해선(아무 비용을 써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고’는 가난한 사람에게 더 흔히, 더 심각하게 일어난다.
‘그건 사고였다’라는 이야기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갖게 되기를
질문을 바꾸기, 질문을 시작하기
저자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안전하게 지내세요”라는 인사를 자주 건네던 팬데믹 시기에 집필했다. 그는 이 인사를 길게 말하면 다음과 같을 거라고 말한다. “안전하게 지내시길 빕니다. 미국에서 살고 죽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요인들이 당신을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이기를 빕니다. 안전하게 지내시길 빕니다. 그리고 안전하지 않으시다면 ‘그건 사고였다’라는 이야기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갖게 되시길 빕니다.”
변화의 동력으로 “사랑과 분노”를 말하는 이 책은 반복되는 재난 참사에 무기력감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운 좋게 나는 ‘사고’를 면했다는 안도감에 빠지거나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위험 사회의 불안을 비난이나 낙인으로 해소하지 않으려는 이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맺는 글’에서 저자는 책을 쓰는 내내 하나의 질문,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사고이면 어떻게 되는가?”와 계속 만났다고 한다. 누구나 이 두려움 때문에 ‘사고’를 과거로 두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 남의 탓 남의 불행으로 여기며 나와 분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저자는 질문을 바꾸자고 한다. “무언가가 사고인지 아닌지가 왜 중요한가?”
저자는 어디선가 “그건 ‘사고’였다”라는 말이 들리면 이를 경고음으로 여기고, 다시 질문을 하는 계기로 삼으라고 권한다. “어떻게 된 일인가?” “왜 그런 것인가?”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 “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 왜냐면 어떤 것도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