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순신 장군의 죽음으로 노량해전에서 멈춘 난중일기그 소중한 국가적 유산이 한 연구자에 의해 복원되다!논란 중인 합포, 적진포, 고리량 등의 위치를 다시 비정하고칠천량해전, 노량해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임진왜란사 연구자 윤헌식의 『난중일기』 완역본충무공 이순신의 개인사가 담긴 『난중일기』는 단순한 개인 기록에 그치지 않고 군 최고 지휘관이 남긴 전쟁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다. 이러한 연유로 『난중일기』에 대한 독자의 관심과 요구는 매해 끊이지 않았고 번역자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상당수의 번역본이 출간될 수 있었다. 출간되는 번역본의 수준은 해가 지날 때마다 점차 높은 수준이 되었으며, 그 결과 『난중일기』의 판독과 번역은 현재 그 수준이 거의 완성 단계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역시 독자에게 정확하게 난중일기를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왔으며 기존의 오류를 수정하고 상세한 주석을 달아 독자가 난중일기를 오류 없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하였다.『난중일기』는 임진왜란 시기 전쟁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요 사료 중 하나다. 이 책은 기존의 번역본들이 이루어 놓은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난중일기』가 가지는 역사자료로서의 특징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적 의미와 배경에 대해 자세히 다루려고 한다.
저자소개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중요한 해전을 치루며 왜선 320척을 격파했다. 49세 때 그는 한산도로 진을 옮겨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53세 때 원균 일파의 모함과 상소로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던 중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출옥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척의 왜선과 맞서 싸웠고(명량대첩), 54세 때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하였다. 6년 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됨에 이어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5년 뒤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져 역사에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목차
일러두기 5이순신 가계도 7머리말 8난중일기 완역1592년 임진일기(壬辰日記) 171593년 계사일기(癸巳日記) 591594년 갑오일기(甲午日記) 1131595년 을미일기(乙未日記) 1931596년 병신일기(丙申日記) 2471597년 정유일기 1(丁酉日記) 3191597년 정유일기 2(續丁酉日記) 3791598년 무술일기(戊戌日記) 409난중일기 주석1592년 임진일기(壬辰日記) 4241593년 계사일기(癸巳日記) 4421594년 갑오일기(甲午日記) 4561595년 을미일기(乙未日記) 4731596년 병신일기(丙申日記) 4811597년 정유일기 1(丁酉日記) 5031597년 정유일기 2(續丁酉日記) 5461598년 무술일기(戊戌日記) 556부록원문 판독 및 번역 오류 교정 572참고문헌 578참고사이트 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