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들이 속삭인다
과거가 실재라면 역사는 이야기, 즉 서사이다. 서사는 보통 내용과 형식의 결합으로 구성되는데 역사서사란 과거 사실을 내용으로 해서 구성된 이야기 형식이다. 과거 사실, 즉 그것을 기록한 사료들인 내용에도 분명 허구가 개입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동시에 과거를 역사서사(역사이야기)로 만드는 형식에도 물론 허구의 개입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우리가 팩트라고 믿는 사료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플롯이 필요한데 그것은 역사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허구이기 때문이다.
역사가가 과거로부터 어떤 사실을 발견하여 그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면 결국 모든 역사는 사실이라는 내용과 허구라는 형식이 결합한 팩션이라는 주장이 성립한다. 역사를 놓고 그것이 사실이냐 허구냐, 팩트냐 아니냐를 이분법적으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논의이며, 역사적 진실이란 허구를 배제한 100퍼센트 사실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내용이 허구의 그릇에 담겨짐으로써 의미 있게 소통되는 이야기다.
설화나 팩션은 과거와 현재를 꿈으로 이어줌으로써 우리를 현실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따라서 “팩션시대, ‘꿈꾸는 역사’를 許하라”라는 이 책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역사에서는 불가능한 ‘꿈의 역사’를 열어놓기 위함이다. 과거의 사건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고 별들이 보는 위치나 시간에 따라 크기도 밝기도 달라 보이는 것처럼 과거의 사건들도 얼마든지 각기 다르게 이야기될 수 있다. 답이 없는 우리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은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