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효석의 작품 세계는 두 가지 경향으로 대별된다. 우선 동반자적 경향으로 계급 문학을 옹호하는 성격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러한 초기 소설의 사회적인 관심과 현실에 대한 비판 때문에 그는 카프 진영으로부터 이른바 동반자작가라 불리게 되었다.
이효석의 동반자적 작품들은 계급 문학에서 표방하는 사상보다는 주로 러시아라는 異國에 대한 동경, 즉 이국 취향이 나타나 있다.
계급 문학이 위축되는 시기에 이효석의 작품 세계도 변모한다. 즉 낭만주의적 자연 친화의 세계로 변화한다. 1932년경부터 효석은 초기의 경향문학적 요소를 탈피하고 그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는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향토적, 성적 모티브를 중심으로 한 특이한 작품 세계를 시적 문체로 승화시킨 소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고요한 곳에서 혼자서 가만히 가지려는 목적 한 점, 그 목적만을 노리고 마음을 통일시키면서 아침 저녁의 산보를 해오는 속에서 사파에 대한 의욕을 말끔히 떨쳐 버렸다고 단영을 생각했다. 그렇건만 아직도 살아있는 육체에는 아침 공기는 지나치게 차서 입술이 얼고 팔과 무릎이 떨리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감각의 슬픔이다.
여관으로 돌아오자 마자 욕실에 내려가 더운 온수 속에 깊이 잠기니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육체의 안정이 비로소 소생된다. 더운 김 속에서 전신의 피가 따뜻이 더워지면서 살았다는 기쁨이 본능적으로 솟는다. 마침 아침 햇빛이 높은 창으로 새어들어 김이 자옥이 우거진 욕실은 보야면서도 밝게 드러났다. 전면 하얀 타일을 깐 속에서 욕통의 바닥만이 푸른 빛으로 그 속에 햇살이 쪼이니 맑은 물은 바닷속같이 깊게 보인다. 그 좁은 바닷속에 인어같이 너볏이 몸을 잠그고 있으면 외에 아무도 없는 자유로운 욕실의 아침은 단영에게는 가장 즐거운 한 때이기도 하다.
물속에서 나와 욕통전에 나른한 몸을 기대이니 불그스름하게 상기된 육체가 하얀 타일의 배경 속에서 막 익으려는 풋실과같이도 아름답다. 몸을 굽어보고 매만져보면서 단영 자신 자기의 육신을 더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곡선과 탄력과 색깔과――세상의 삼라만상중에서 인간의 육체의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 것인가. 반생 동안 몸 구석구석에 새겨진 육체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숨김없는 내 몸을 바라보노라니 새삼스럽게 그 아름다움이 자각되며 인간됨의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소설가. 호는 가산. 사숙에서 한학을 배우고 1913년 평창 보통학교에 입학, 1925년 경성 제일 고보를 거쳐 이듬해 경성 제대 법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이 해 동대학의 조선인 학생회 문우회에 참가하여 동회에서 발간하는 기관지 문우에 시를 발표하고 매일 신보에 시와 단편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28년 조선 지광에 『기우』,『행진곡』등을 발표하고 이듬해 동교를 졸업, 1931년 잠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근무하다가 경성 농업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경성 시절을 통해 실의에 잠기기는 했으나 이 무렵부터 세상일과 인연을 단절, 본격적인 작품 생활에 전념하여 한때의 동반 작가라는 것을 청산했다. 이 해 구인회에 참여했고, 이 무렵『돈』,『수탉』등 향토를 무대로 한 일련의 작품을 내놓았다.
1934년 평양 숭실 전문학교 교수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에 전념, 1936년『분녀』를 발표하여 그 특유의 성 모럴을 제시하고 『산』,『들』과 같은 작품에서 향토적 서정이 넘치는 작품 세계를 보여 주었다. 또한 그 해 한국 현대 단편 소설의 대표작의 하나인 『메밀꽃 필 무렵』을 조광에 발표하였다.
1934년을 전후하여 작품 경향이 변모, 소설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 올리는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7년『개살구』『낙엽기』, 1938년 『장미 병들다』등 후기에 해당하는 작품을 발표, 초기의 향토적이니 소설과는 달이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세계를 지향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평소 매스필드나 체호프,입센,토마스 만을 섭렵하면서 문학관의 정립을 추구했다. 『화분』같은 작품에 짙게 반영되어 있는 또 하나의 특질인 자연적인 상태의 성적 개방은 인간성에의 회귀를 의미하는데, 유교적인 상태에 유폐된 한국 소설의 차원을 넘어선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장편에 『화분』『벽공 무한』『창공』등이 있으나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탁월한 세계를 제시, 다나편 자가가로서 뚜렷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했다. 1942년 『봄의상』『풀잎』『일요일』등의 단편을 발표한 것을 마지막으로 5월 25일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향리인 진부에 안장되었다.
작품에는 상기 외에 『하루빈』『약령기』『일기』『노령근해』『상륙』『북국통신』『오리온과 능금』『가을과 서정』『성수부』『성화』『북국춘신』『사냥』『석류』『천사와 산문시』『독백』『시월에 피는 능금꽃』『성찬』『마음에 남는 풍경』『삽화』『계절』『인간 산문』『가을과 사냥』『해바라기』『거리의 목가』『막』『소라』『부록』『공상 구락부』『향수』『산정』『일표의 공능』『황제』『여수』『은은한 빛』『창공』『소복과 청자』『산협』『라오 고원의 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