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효석의 작품 세계는 두 가지 경향으로 대별된다. 우선 동반자적 경향으로 계급 문학을 옹호하는 성격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러한 초기 소설의 사회적인 관심과 현실에 대한 비판 때문에 그는 카프 진영으로부터 이른바 동반자작가라 불리게 되었다.
이효석의 동반자적 작품들은 계급 문학에서 표방하는 사상보다는 주로 러시아라는 異國에 대한 동경, 즉 이국 취향이 나타나 있다.
계급 문학이 위축되는 시기에 이효석의 작품 세계도 변모한다. 즉 낭만주의적 자연 친화의 세계로 변화한다. 1932년경부터 효석은 초기의 경향문학적 요소를 탈피하고 그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는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향토적, 성적 모티브를 중심으로 한 특이한 작품 세계를 시적 문체로 승화시킨 소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합장하는 나의 시늉을 흘겨보고는 아내는 그날부터 행장을 꾸리기에 정신이 없다. 행장이라야 지극히 간단한 것이나 잘고 빈틈없는 여자의 마음씨라 간 뒤의 집안 살림살이의 요령과 질서까지를 일가 아이에게 트여주고 거기에 맞도록 집안을 온통 한바탕 치우고 정돈하기에 여러 날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눈에 띄우리 만치 말끔하게 거두어진 것을 나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집안이 정돈된 것보다도 더 신기한 일이 생겼다. 떠나는 그날 저녁 거리에서 돌아온 아내의 자태에 일대 변혁이 생겼던 것이니, 머리를 자르고 퍼머넨트를 건 것이다. 집안이 정리된 이상의 정리였다. 멀끔하게 추려서는 고슬고슬 지져놓은 머리는 용모를 일변시켜 총명하고 개운한 자태로 만들어놓았다. 굳이 펄쩍뛰며 놀랄 것은 없었던 것이 퍼머넨트에 대한 의논도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충충대고 권한 장본인은 결국 나 자신이었던 까닭이다.
여자의 머리로서 퍼머넨트를 나는 오래 전부터 모든 비판을 떠나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해 왔다. 모방이니 흉내니 한다면 이 땅에 그럼 현재 모방이 아니고 흉내가 아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살로매가 요한의 머리를 형용해서 에돔 나라의 포도송이같다고 한 머리, 그것을 나는 남녀간의 머리의 미의 극치라고 생각해 왔던 까닭에 아내의 머리에 그 운치를 베풀자는 것이었다. 내가 놀란 것은 도리어 아내의 그 결단성이었다. 아무리 충충대도, 오랫동안 주저하고 머뭇거리던 것을 그날로 단행한 그 결단성인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 아내의 동무들의 실물교육이 직접 도와 힘이 된 모양도 같다.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소설가. 호는 가산. 사숙에서 한학을 배우고 1913년 평창 보통학교에 입학, 1925년 경성 제일 고보를 거쳐 이듬해 경성 제대 법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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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 동대학의 조선인 학생회 문우회에 참가하여 동회에서 발간하는 기관지 '문우'에 시를 발표하고 '매일 신보'에 시와 단편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28년 '조선 지광'에 『기우』,『행진곡』등을 발표하고 이듬해 동교를 졸업, 1931년 잠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근무하다가 경성 농업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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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시절을 통해 실의에 잠기기는 했으나 이 무렵부터 세상일과 인연을 단절, 본격적인 작품 생활에 전념하여 한때의 동반 작가라는 것을 청산했다. 이 해 '구인회'에 참여했고, 이 무렵『돈』,『수탉』등 향토를 무대로 한 일련의 작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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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평양 숭실 전문학교 교수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에 전념, 1936년『분녀』를 발표하여 그 특유의 성 모럴을 제시하고 『산』,『들』과 같은 작품에서 향토적 서정이 넘치는 작품 세계를 보여 주었다. 또한 그 해 한국 현대 단편 소설의 대표작의 하나인 『메밀꽃 필 무렵』을 '조광'에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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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을 전후하여 작품 경향이 변모, 소설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 올리는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7년『개살구』『낙엽기』, 1938년 『장미 병들다』등 후기에 해당하는 작품을 발표, 초기의 향토적이니 소설과는 달이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세계를 지향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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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소 매스필드나 체호프,입센,토마스 만을 섭렵하면서 문학관의 정립을 추구했다. 『화분』같은 작품에 짙게 반영되어 있는 또 하나의 특질인 자연적인 상태의 성적 개방은 인간성에의 회귀를 의미하는데, 유교적인 상태에 유폐된 한국 소설의 차원을 넘어선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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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에 『화분』『벽공 무한』『창공』등이 있으나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탁월한 세계를 제시, 다나편 자가가로서 뚜렷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했다. 1942년 『봄의상』『풀잎』『일요일』등의 단편을 발표한 것을 마지막으로 5월 25일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향리인 진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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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는 상기 외에 『하루빈』『약령기』『일기』『노령근해』『상륙』『북국통신』『오리온과 능금』『가을과 서정』『성수부』『성화』『북국춘신』『사냥』『석류』『천사와 산문시』『독백』『시월에 피는 능금꽃』『성찬』『마음에 남는 풍경』『삽화』『계절』『인간 산문』『가을과 사냥』『해바라기』『거리의 목가』『막』『소라』『부록』『공상 구락부』『향수』『산정』『일표의 공능』『황제』『여수』『은은한 빛』『창공』『소복과 청자』『산협』『라오 고원의 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