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효석의 작품 세계는 두 가지 경향으로 대별된다. 우선 동반자적 경향으로 계급 문학을 옹호하는 성격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러한 초기 소설의 사회적인 관심과 현실에 대한 비판 때문에 그는 카프 진영으로부터 이른바 동반자작가라 불리게 되었다.
이효석의 동반자적 작품들은 계급 문학에서 표방하는 사상보다는 주로 러시아라는 異國에 대한 동경, 즉 이국 취향이 나타나 있다.
계급 문학이 위축되는 시기에 이효석의 작품 세계도 변모한다. 즉 낭만주의적 자연 친화의 세계로 변화한다. 1932년경부터 효석은 초기의 경향문학적 요소를 탈피하고 그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는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향토적, 성적 모티브를 중심으로 한 특이한 작품 세계를 시적 문체로 승화시킨 소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건이 그것을 버린 지 삼년이 넘었다. 커다란 시대의 움직임이었다. 그 역 한 시험이라고 생갈할 수밖에는 없었다. 많은 동무들이 선 위에서 떨어졌다.
그 세상에 가 있는 사람 외에는 거개 타락하여 일개의 시민이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표변해 버렸거나 하였다. 그 중에서 양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어느결엔지 바다를 건너 달아났다. 당시에는 갈 바를 몰라 마음이 설레던 것도 때를 지남을 따라 초조의 속에서도 차차 마음이 가라앉았다. 반년 동안이나 우물쭈물 지내는 동안에 그는 알맞은 사람을 얻어 잡지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마지막 목적은 아니었으나 그럭저럭하는 동안에 마음의 안정도 얻고 한편으로 시세도 살피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일년도 지탱하지 못하고 잡지는 실패였다. 끌어낸 친구는 가엾게도 얼만 안되는 자본을 완전히 소탕해 버렸다. 그마저 없어지니 건은 입에 풀칠할 도리조차 없어 가난과 불안의 구렁 속에서 해매일 수밖에 없었다. 카페 여급으로 있는 보배를 알게 되고 가까와진 것은 이런 때였다. 건은 보배를 원하였고 보배도 건을 구하였다. 반드시 연애가 아닌 것도 아니었으나 보배가 건을 구한 것은 그 역 당시 마음의 가난과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배는 그때의 실연의 상처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중이었다. 학교 시대의 스승이요, 학교를 나와서는 애인이라 믿었던 사람이 사랑의 유물까지 남긴 뒤, 하필 사람이 없어 그의 동무를 이끌고 달아난 것이었다. 생각하면 한 사람의 부량한 스승이 장기인 음악을 낚시삼아 두 사람의 제자를 교묘하게 차례차례 낚은 셈이었다.
학교를 마쳤을 뿐, 인생에 미흡한 보배는 기막힌 생각에 무엇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도 없었다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소설가. 호는 가산. 사숙에서 한학을 배우고 1913년 평창 보통학교에 입학, 1925년 경성 제일 고보를 거쳐 이듬해 경성 제대 법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이 해 동대학의 조선인 학생회 문우회에 참가하여 동회에서 발간하는 기관지 문우에 시를 발표하고 매일 신보에 시와 단편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28년 조선 지광에 『기우』,『행진곡』등을 발표하고 이듬해 동교를 졸업, 1931년 잠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근무하다가 경성 농업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경성 시절을 통해 실의에 잠기기는 했으나 이 무렵부터 세상일과 인연을 단절, 본격적인 작품 생활에 전념하여 한때의 동반 작가라는 것을 청산했다. 이 해 구인회에 참여했고, 이 무렵『돈』,『수탉』등 향토를 무대로 한 일련의 작품을 내놓았다.
1934년 평양 숭실 전문학교 교수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에 전념, 1936년『분녀』를 발표하여 그 특유의 성 모럴을 제시하고 『산』,『들』과 같은 작품에서 향토적 서정이 넘치는 작품 세계를 보여 주었다. 또한 그 해 한국 현대 단편 소설의 대표작의 하나인 『메밀꽃 필 무렵』을 조광에 발표하였다.
1934년을 전후하여 작품 경향이 변모, 소설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 올리는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7년『개살구』『낙엽기』, 1938년 『장미 병들다』등 후기에 해당하는 작품을 발표, 초기의 향토적이니 소설과는 달이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세계를 지향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평소 매스필드나 체호프,입센,토마스 만을 섭렵하면서 문학관의 정립을 추구했다. 『화분』같은 작품에 짙게 반영되어 있는 또 하나의 특질인 자연적인 상태의 성적 개방은 인간성에의 회귀를 의미하는데, 유교적인 상태에 유폐된 한국 소설의 차원을 넘어선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장편에 『화분』『벽공 무한』『창공』등이 있으나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탁월한 세계를 제시, 다나편 자가가로서 뚜렷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했다. 1942년 『봄의상』『풀잎』『일요일』등의 단편을 발표한 것을 마지막으로 5월 25일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향리인 진부에 안장되었다.
작품에는 상기 외에 『하루빈』『약령기』『일기』『노령근해』『상륙』『북국통신』『오리온과 능금』『가을과 서정』『성수부』『성화』『북국춘신』『사냥』『석류』『천사와 산문시』『독백』『시월에 피는 능금꽃』『성찬』『마음에 남는 풍경』『삽화』『계절』『인간 산문』『가을과 사냥』『해바라기』『거리의 목가』『막』『소라』『부록』『공상 구락부』『향수』『산정』『일표의 공능』『황제』『여수』『은은한 빛』『창공』『소복과 청자』『산협』『라오 고원의 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