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화적 정치 소설 금수회의록의 저자 안국선, 그의 또 다른 작품세계 애국정신 웅변 및 연설에 관해 다루고 있다.
연설을 한 번 흐무러지게 잘하면 만좌 제인이 박장 갈채하여, 「잘한다, 옳은 말이라」고 칭찬하면 연설하는 기 인도 말할 수 없이 기 심(其心)에 유쾌할지라. 고로 하인이든지 연설을 잘하고 싶은 심히 유함은 인정이 상태라. 연이나 최초부터 잘하기는 도저히 불능함이오, 연습하는 공부를 적(積)치 아니하면 불가하도다. 기 연습하는 방법은 매거(枚擧)할 가황(暇遑)이 무하나 위선 제일 긴요한 것은, 인(人)을 대하여 항상 변론하되 기탄(忌憚)치 말고 원려(遠慮)치 말고 굴치 말고 축(縮)지 말고, 인이 아(我)를 조소하되 고(顧)치 말며, 인이 아를 광한(狂漢)이라 하여도 고치 말며, 역(力)이 진하여도 태(怠)치 말며, 일(日)이 모(暮)하여도 권(倦)치 말며, 반(飯)을 대하더라도 기 변론을 필한 후에 식하고, 사(事)가 유하더라도 기 언론이 식(息)한 후에 행하여, 쓸데없는 언론이라도 항상 변론할 것이라.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호는 천강(天江), 필명 농구자. 1895년 당시 군부대신이었던 백부 안경수의 도움으로 관비유학생에 선발되어 도일, 경응의숙과 도쿄전문학교 정치과에서 수학했다. 1899년 도쿄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하였으나 박영효와 관련된 역모사건으로 체포되어 종신 유형을 언도받았다. 만 4년 간 미결수로 구금된 동안에 기독교를 신봉하게 되었다.
1907년 유배에서 풀려 돈명의숙 교사로 재직하면서 정치 경제 등을 강의하였고, 『외교통의』, 『비율빈전사』, 『정치원론』, 『연설법방』등의 저서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사회 계몽 활동을 펼쳤다. 1908년 탁지부 서기관에 임명된 후 관게에 투신하였으며, 1911년부터 약 2년간 청도군수로 재직했다. 이후 박영효의 친일적이고 타협적인 민족개량주의 노선에 공감하여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경제문제에 관한 글을 『청년』과 『계명』등에 발표하기도 했다. 1926년 7월에 사망하였다.
1908년에 황성서적조합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된 정치소설 성격의 우화소설인 『금수회의록』은 계몽의 선행조건이 정신적, 윤리적 개조라는 의식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정신개조의 잣대로의 엄격한 윤리의식을 일반에 확장하는 것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15년에 발표한 소설집 『공진회』에의 수록된 「기생」,「시골노인 이야기」등의 작품에는 작가의 계몽 의지가 드러나지 않으며, 「인력거꾼」의 경우는 당시의 총독정치를 찬양하는 내용이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