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의 강
작가 임서상은 휴머니즘을 작품 속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소설가이다. 그러므로 그는 제도와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인간 존재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현실을 맹렬히 부정하는 과감성을 여러 작품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어린아이가 작중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분교목장>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쓴 소설이다. 아이의 눈을 통해 폐교가 있는 산골 마을의 풍경을 수채화처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탄탄한 문장과 얼개, 독자들을 계속 흡인하는 문체와 줄거리로써 도시인들에 의해서 파괴되고 오염되어 가는 농촌의 아픔을 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먼 들녘, 폐촌의 이름으로 빈들을 달려가는 바람. 까무룩히 몸 떠는 나무들. 깃발을 세우고 와글와글 쓰려졌다. 일어서는 갈대들. 사숙 주위 잡초 사이에서 떼지어 일어서려는 코스모스, 빨강, 분홍, 흰 얼굴로 마지막 웃음을 터뜨리며 야윈 허리를 흔드는 무리들. 꽃도 계절도 분교의 옛 모습을 붙잡기엔 너무 힘겨워 보인다. 오후에는 이슬비가 추슬추슬 내렸다.''
마치 세밀한 붓으로 그려나간 듯 정교하고 디테일한 묘사력을 보이고 있는 <분교목장>은 외부세계의 폭력적 개입에 유린당하는 강원도 산골 마을의 변화를 고발한 작품이다. 스키장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휩쓸고 지나가는 땅값의 폭등과 함께 이 마을의 근본 질서가 교란되는 것을 시작으로 분교의 폐교와 돼지우리화, 그리고 마침내는 마을 앞으로 뚫리게 되어 있다는 고속도로 건설의 소문이 덮쳐들었다. 나름의 자족적 질서 속에서 평화로웠던 세계가 짧은 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그 폐허를 빈 바람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