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아들 이이재의 희망세상
‘희망(希望)’이란 단어는 앞으로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 또는 그러한 소망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희망이란 말 속에는 반드시 ‘좋은 일’을 기대하는 마음과 ‘밝은’ 전망이 내포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과연 “당신의 인생에는 희망이 있는가?” 누군가 문득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사람들은 무어라고 답할까?‘장미족(장기간 미취업자)’,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 ‘대5족(취업을 못해 졸업을 미루는 대학 5학년)’ 등 청년실업을 빗댄 신조어가 20대에서 넘쳐나고, ‘삼팔선(38세가 되면 퇴출대상)’과 ‘오륙도(50~60대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처럼 30~40대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담긴 신조어가 통용되는 현실에서 희망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인지 모르겠다. 매일 같이 언론보도엔 희망을 주는 소식보다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심각한 문제에 관한 기사들만 가득하다.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없어!”라거나 “살맛이 안 난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왜 살맛이 나지 않는 걸까? 바로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지금 한국사회는, 아니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지구상 어느 나라 사람들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하고 당장의 문제 해결에 급급해 하는 모습이다.산업혁명 이래 지속적으로 믿어왔던 인류번영의 낙관적 전망이 최근 들어 서서히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속에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적 목소리가 경제학자들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제성장은 고사하고 경제체제의 유지도 불가능한 혼돈에 빠질 수도 있다는 하는 반성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 따뜻한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4.0’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자본주의 4.0’은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가? 인류문명의 발달사가 문제 해결을 위한 진화의 발자취이듯이 자본주의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을 통해 진화해 나가리라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4.0’은 그 이전의 자본주의보다는 희망적일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그것이 좋은 대안이 되느냐 못 되느냐의 논쟁이 아니라,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대안이라고 하여도 이론적 논의만 무성하고 현실의 세계에 적용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점이다.정치인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을 바꾸려면,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려면, 현실에 절망한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면 무엇보다 먼저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최근 정치권이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요동쳤던 현상에서 보듯이 이런 사실에 대해 이미 국민은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경제에 대한 갈증이 간절해질수록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이런 시대적 전환기의 한 복판에서 나는 그동안의 공직생활을 과감히 접고 정치인의 길로 뛰어들었다. 주변에서는 “왜 싸움질하고 욕만 먹는 정치판에 뛰어드느냐”며 말리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정작 아내와 가족, 가까운 친구 선후배들은 말리지 않았다. 미래와 꿈이 있는 희망세상을 만드는 길에 내 삶의 모든 것을 바치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들은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2010년 봄 어느 날, 꽤 유명한 공기업 사장을 하고 있던 선배가 그 해 6월 치러지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 한다면서 내게 던진 말이 생각난다. “이번에 출마하려면 언제부터 준비해야 하는가?” 그 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전 생애가 준비기간이지요. 이제 와서 준비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결국 그 선배는 출마하지 못했다. 나는 정치의 길이란 각자 나름대로의 삶을 통해 누적된 숱한 경험과 고뇌 속에 녹아들고 체화된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를 하는 이유와 목적에 분명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분명 사익(私益)이 아니라 공익(公益)에 닿아 있어야 하며, 자신의 입지에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해서 흔들리거나 포기하지 않는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 즉, 이 사회가 시대정신으로 요구하는 어떤 가치를 똑똑히 인식하고 있고, 그 가치를 누구보다 자신이 잘 받들고 실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없이는 정치의 길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거란 정치하는 사람들의 이러한 가치관과 사명을 누가 더 잘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한 주기적인 검증과 국민적 심판의 장이 되어야 한다.